홀리 돌리 바겐스토어 (3)

by Angela Gus

도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던 잡동사니들이 전부 꿈이었다니. 아니,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꿈이라는 게 이렇게 형태로 존재한다니.


“죄송해요. 꿈을 처음 봐서요. 좀 놀랐어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꿈이라는 게 형태가 없었거든요.”


“그래요? 참 이상하네요. 여기나 저기나 비슷할 것 같은데... 그럼, 지은 씨가 사는 곳에서는 꿈이 깨지지도 않나요?”


“음... 그러니까 꿈이 깨진다는 말은 저희도 하는데요, 근데 그게 진짜 유리가 깨지듯 깨지는 건 아니니까...”

“무슨 소리예요? 유리가 깨지듯 깨지잖아요. 깨졌다고 말하는 순간 와장창! 아, 미안해요. 지은 씨가 살던 곳은 다를 수 있죠. 여기선 꿈이 깨질 때는 대리석 바닥에 떨어뜨린 유리병처럼 깨져요. 물론 여기도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있을 때는 눈에 안 보여요. 왜냐하면 꿈은 형태가 고정된 게 아니니까요. 꿈을 꾸는 사람의 마음과 함께 계속 변하면서 현실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가니까 어쩔 땐 보고 있으면서도 모를 수도 있고요. 왜, 사람들이 ‘꿈만 같다’고 할 때 있죠? 사실은 정말로 꿈을 보고 있는 거예요. 단지 현실과 합쳐졌을 뿐이죠.


그런데 ‘꿈이 깨졌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꿈이 정말 깨어지면서 눈앞에 툭 떨어지잖아요. 아, 미안. 여기서는 그렇다고요. 그러니까 포기하기로 한 순간에 포기하기로 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거예요.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깨진 꿈을 집다가 손을 배이기도 했고, 살짝 금이 간 부분을 잘못 건드려서 산산조각을 내기도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깨진 꿈을 아무 데나 버려서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경우도 있었고요. 버려지는 꿈 문제로 고민하던 엘라 시장님이 결국 시의회를 설득하고 여러 차례 공청회를 연 끝에 ‘꿈 수거 및 재판매에 관한 조례’를 만드셨죠.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엄마가 사업자로 선정이 되었고요.”


“버려지는 꿈이 그렇게 많았어요?”


“한 사람이 꾸는 크고 작은 꿈만해도 얼마나 많아요. 안 그래요?”


지은은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가끔 자다가 꾸는 소위 '개꿈'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꿈이라는 것을 꾸어 본 적도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주체 못 할 정도로 솟아나던 꿈들은 전부 엄마의 관 속에 넣어 함께 태워버린 후 기억에서 지웠다. 때때로 떠오르는 수많은 공상은 현실도피에 불과해서 꿈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민망했다. 다행히 홀리는 지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모든 시민은 꿈이 깨졌거나 망가지면 임의로 버려서는 안 되고요. 시청 홈페이지에서 ‘꿈 수리 및 위탁 판매 신청서’를 작성해야 해요. 접수 번호를 발급받으면 꿈 본체와 모든 조각을 종량제 봉투에 넣고 봉투에 접수 번호를 유성 매직으로 적은 다음에 ‘깨진 꿈의 거리’에 있는 수거함에 넣어요. 그러면 꿈 수거함 관리와 감정을 담당하는 네티 벤톤씨가 1차 작업을 시작해요. 본체는 본체대로 부품은 부품대로 조각은 조각대로 분류를 해요. 벤톤씨는 워낙 철저해서 기능, 색상, 소재, 재질... 분류할 수 있는 모든 기준으로 분류를 해 놓죠. 아마 지금도 새로운 분류 기준을 만들고 있을 거예요. 조각이 너무 작으면 녹여서 브릭으로 만들어요. 아무래도 브릭이 제일 활용도가 높거든요.”


“음... 근데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요, 달링?”


“아주 많이 산산조각이 난 경우 말고, 살짝 금이 갔거나, 이가 빠졌거나, 깔끔하게 두 동강 났거나... 그럴 때는 스스로 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도 다 토니 베넷, 아니 벤톤 씨에게 맡겨야 해요?”


“오, 달링... 물론이죠. 아까 사람들이 깨진 꿈에 많이들 다쳤다고 했잖아요? 주로 혼자 어떻게 해보려던 사람들이 손이든 어디든 깊은 상처를 입곤 했어요.”


“아... 깨진 꿈은 위험한 거군요.”


“위험까지는 모르겠지만 다루기 힘든 건 분명하죠. 게다가 꿈의 주인은 꿈이 깨진 순간에는 꿈이 깨진 이유도 알 수 없고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부서진 건지 알아차리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수리를 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방금 전까지 형태도 없었는데 갑자기 우당탕이든 와장창이든 하여튼 부서진 무언가가 눈앞에 뚝 떨어졌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알기가 쉽겠어요? 원인이 잘 다루지 못한 자기한테 있는지, 잘못된 시간과 장소에 놓여 있었기 때문인 건지, 뭔가 구조적 문제가 있었는지, 딱 뭐 하나가 잘 못 끼워져서 금이 간 건지 꿈 주인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꿈이 깨진 이유를 당사자에게 알아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좀 잔인하지 않나요? 일단은 좀 거리를 둘 수 있는 시간을 줄 필요가 있어요.


감정인이 하는 일이 그런 거예요. 마치 깔끔하게 두 조각이 나서 본드로 붙이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보여도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건지부터 파악하는 거죠. 때로는 아주 살짝 사이즈가 맞지 않는 부품이 들어가서 시작된 작은 균열 때문에 두 동강 나 버린 꿈도 있는데, 그 부품을 교체하지 않고 그냥 붙이면 또 깨지지 않겠어요?”


“내 꿈을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음... 그건 여기 사람들도 똑같아요. 다들 내 꿈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신하고 있을 거예요. 근데 의외로 그렇지가 않아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뭐가 섞여 들어올 수 있고,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듣고 어울리지도 않는 무언가를 끼워 넣기도 하고 그래요. 게다가 깨지기 전까지는 형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으니까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아채기가 어렵거든요. 뭐, 그래서 항상 꿈의 형태를 확인하고 디자인하는 명상 훈련이 있기는 한데 오랜 수련이 필요한 일이라 일반인들에게는 문턱이 높고요. 벤톤씨가 항상 놀라는 게 뭔 줄 알아요?”


“뭔데요?”


“접수 신청서에 적힌 내용과 실제 꿈 조각의 총합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거래요. 당연히 모든 꿈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수의 꿈이 주인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건데요. 어쩔 땐 깨져 봐야 알 수 있으니 그런 경우에는 깨진 편이 오히려 행운일지도 모르겠다고 벤톤씨가 여러 번 말했어요. 이렇게나 꿈에 대해 인지부조화가 큰 사람들은 꿈을 이루고도 이룬 줄도 모를 테니, 차라리 한 번 깨져 버려서 다행이라고.”


“어쩌면... 깨질 꿈도 없는 것보다는 꿈이 깨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야 말할 것도 없죠, 달링. 다루기 힘들긴 해도 꿈은 누구나 항상 최소한 하나쯤은 갖고 있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가게가 필요한 거죠. 게다가 최근에 밝혀졌거든요. 꿈 없이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꿈에 따라 사느라 자기 에너지를 다 쓰게 된다는 도시 전설이 있었는데 우리 시에서 가장 집요하기로 유명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어요.”


지난 10여 년간 꿈 없이 살아온 지은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폴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윈터 원더랜드 시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지 않았다. 세상에서 버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꿈을 포기했던 지은의 시간은 어쩌면 지은과 전혀 무관한 욕망을 가진 누군가를 위해 쓰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은은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 나온 거대한 가오나시 괴물이 지은의 시간을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덮쳐 오는 상상을 애써 걷어내고 폴리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어쨌거나 벤톤씨는 감정을 끝내면 보고서를 일단 나한테 보내요. 모든 조각을 자세하게 분석한 부분까지 전부 읽지는 않아요. 그건 수리할 때 필요한 내용이니까. 저는 결론 부분만 요약해서 해당 꿈이,

① 원상 복구 가능
② 다른 꿈으로 재구성
③ 복구불가 - 부품 및 소재로 재활용


이 세 가지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신청인에게 알려드려요. 신청인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언제든지 감정 보고서 열람 신청을 할 수 있고요. 모든 꿈은 해당하는 단계에 따라 수리를 해요. ①, ②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수리한 꿈을 본인이 다시 가지고 싶은지 어떤지 의사를 확인하고요. 물론 수리가 끝난 다음에 보고 판단하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원상 복구가 되어도 다시 가져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럼요. 일단 한 번 깨어진 꿈은 돌아보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고요. 꼭 깨졌기 때문이 아니라, 깨지고 나서 확인해 보니 사실 자기랑 딱 맞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다른 꿈을 찾겠다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왜 수리를 해요? 주인이 원하지 않는데?”


“꿈이 낭비되면 안 되니까요. 꿈이 그 사람 것만은 아니잖아요.”


“그런... 가요?”


“아... 지은 씨가 온 곳에서는 아직도 꿈을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지은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는데, 다행히 폴리는 또 지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여기도 예전에는 꿈을 오롯이 개인이 만들고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뭐, 저도 책에서 읽었거나 엄마한테 들은 게 다지만요.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꿈이라는 게 온전히 스스로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굉장히 많은 경우에 어디선가 본 것, 어디선가 들은 것 중에서 문득 마음에 든 것을 조합해서 만들기도 하고요. 유행도 엄청 타요. 아니, 꿈만큼 유행에 취약한 것도 없을 걸요? 그때그때 주변 분위기에 따라 쉬운 꿈, 어려운 꿈, 그럴듯한 꿈, 무시당하는 꿈이 정해지기도 하고요. 누군가의 꿈을 양도받기도 하고요. 누군가가 몰래 심기도 하고요. 바로 얼마 전에도 한 카지노 사장이 손님들한테 동의를 받지 않고 몰래 꿈을 주입했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는데... 하여튼 꿈이 생겨나는 단계는 정말이지 개인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모두가 반대하는 나만의 꿈이라고 해도, 반대 자체가 꿈에게 오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꺾어 버리기도 하니까요.”


묘하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에 지은은 빠져 들어갔다. 어쩌면 꿈같은 걸 마음속에 둘 형편이 아니라는 생각도 카지노 사장의 꿈이 주입된 도박꾼들처럼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들이 얽히고설킨 것을 무력하게 받아들인 게 아닐까.




지은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친척들 중에 엄마와 닮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기억한다. 같은 유전자의 흔적을 지우고도 남을 정도로 그들은 이혜원이라는 사람과 전혀 달랐다. 단지 검은색일 뿐인 화려한 옷차림은 어딘지 모르게 자연스럽지 않고 거만한 표정과 무척 잘 어울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오늘 처음 만난 지은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어른 노릇을 했고, 혜원과의 촌수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역할을 말끔하게 수행하면서 혜원을 위해 달려온 친구들, 단골들, 동네 이웃들의 자리를 깔끔하게 도려냈다. 지은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것을 느꼈고, 그 차가운 공간에서 지은이 할 수 있는 일은 자는 척을 하여 시야에서 그들을 차단하는 것 밖에 없었다. 눈을 감아도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까지는 막을 수 없었지만.


‘그럼, 집 나갈 때 제 몫으로 들고나갔던 건 어떻게 했대?’


‘집하고 가게가 있다는 것 같더라고.’


‘집 나가는 애한테 그렇게까지 해줬다고?’


‘집은 확실히 해 줬다는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어. 근데 지도 꽤 벌었다고는 하더라고. 생각보다 장사를 꽤 했다나 봐.’


‘그럼 혜원이 재산은 다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는 뭘 어떻게야... 쟤가 있잖아.’


‘아... 쟤.’


‘그러고 보니 그거 생각나네. 집 나갈 때 바리바리 들고나갔다던 엘피가 몇 천 장이었다던데. 그것도 계속 끼고 살았겠지?’


‘하여튼 쓸데없는 것만...’


‘야, 목소리 낮춰. 애 깨.’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죄지은 듯 눈을 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왜 ‘쓸데없는 것’이 엘피 몇 천 장이 아니라 지은 자신인 것처럼 느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대들 힘은 없어도 흘려버려야 할 말들을 왜 한 올 한 올 주워 담아 ‘혜원이 가려주고 있던 진짜 세상’을 상상해 버렸는지 모르겠다.


혜원의 삶을 부정하고 지은의 존재를 껄끄러워하는 그들에게 쓸모를 증명하는 건 지은이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는데. 그동안 꾸었던 수많은 크고 작은 꿈을 혜원의 관 속에 넣어 버리고 그 빈자리를 ‘나는 쓸데없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채운 건 누구의 선택이었을까.


콧잔등으로 찡하고 울리는 느낌에 지은은 정신을 차렸다. 다시 폴리의 이야기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지은이 들어야 할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 듣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Winter Wonderland_funeral.jpg ChatGPT가 그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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