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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리 파튼은 모발 한 올 한 올을 순금으로 만든 풍성한 가발을 매일 새것으로 바꿔 써도 통장에 티도 안 날 갑부이다. 그런데 그 막대한 부는 전부 돌리 파튼이 가수이자 송라이터로서 맨몸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돌리 파튼은 매우 가난한 집에서 컸다고 한다. 새 옷을 사줄 수 없었던 돌리의 어머니는 누더기를 모아 코트를 만들어 입혔다. 돌리 파튼은 엄마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을 사랑했고, 동네 아이들의 놀리건 말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알록달록한 코트가 자랑스러웠던 추억을 담아 <Coat of Many Colors>를 만들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극단적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을 뽑는 오디션이 있다면 유력한 우승 후보인 돌리 파튼이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성공을 배경을 뛰어넘는 재능과 노력 덕분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돌리 파튼의 어머니는 이야기와 노래의 중간 어드매쯤의 포크송을 하루 종일 불렀다고 한다. 소일거리를 하며 부르는 것처럼 편안하게,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나름 기승전결과 교훈까지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리 파튼의 노래들은 어린 시절 이미 몸에 새겨진 멜로디와 정취 안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돌리 파튼은 엄마가 만들어 준 알록달록한 코트를 자랑스러워했던 어린 시절의 마음 그대로 자신의 성장 배경을 자랑스러워했다.
지은은 언어도, 문화도, 세대도 다른데 돌리 파튼의 노래를 들으면 왠지 세상의 중력이 1/10로 줄어들어 어디든 가볍게 통통통 튀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돌리 파튼의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무척 놀랐는데, 삶의 무게를 피자 도우처럼 손바닥 위에서 가볍게 휘리릭 돌릴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무게를 견뎌 본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달링, 달링, 달링? 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정말 지금 우리 엄마랑 이야기 중인 거 아니에요?”
“아뇨, 아뇨, 아뇨, 제가 엄청 존경하는 분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죄송하지만 전 영매는 아닌데요... 음...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게 있어서요.”
“영매가 아니면 더 엄청난 능력이네요!”
그동안 잡생각으로 치부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머릿속 노래들이 ‘엄청난 능력’이라는 위상을 얻게 되다니. 마치 NPC인 줄만 알았던 자신이 사실은 반전을 숨긴 진짜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제가 영매가 아니라서 어머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건 아닌데요. 매니저님 어머니께서 어떻게 코트를 만드셨는지 알 것 같아요. 헌 옷 수거함에서 모은 천 조각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코트를 만드신 거 맞죠? 여기 있는 코트들이 어머니가 만드신 건가요?”
“오 마이 갓, 달링! 정말 엄청나네요! 예스, 앤 노. 일단, 맞아요. 엄마는 헌 옷 수거함에서 모은 천 조각으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코트를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원래는 저에게 입히려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제가 엄마가 만든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가면 항상 난리가 났어요. 4교시가 끝날 때쯤엔 전교에 소문이 퍼져서 모든 아이들이 내 코트를 보러 우리 반 앞에 몰려들곤 했죠. 아이들을 말리러 나온 선생님들조차 내 코트를 흘끗거리시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엄마는 동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가게를 열 수밖에 없었어요. 가게에 제 이름을 붙여서 <폴리 코트점>이라고 했고요. 만드는 족족 팔려나갔죠. 결국 헌 옷 수거함에서 모이는 옷감만으로는 주문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방침을 바꿔야 했어요.”
“어떻게요?”
“코트를 주문하려면 반드시 예전에 좋아했지만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된 옷을 가져와야 한다는 룰을 만들었어요.”
“그냥 버리려던 옷은 안 되고요?”
“그런 건 어차피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 되고, 그러면 자동으로 엄마 가게로 오게 되죠. 엄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이라면 사랑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님이 가져온 소중한 옷이 반드시 필요했던 거죠.”
“그렇지만 어쨌든 쓰고 남은 부분이 생길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게 소중한 옷들에서 나온 소중한 자투리들을 모아서 하나뿐인 코트를 만들겠다는 게 엄마의 계획이었어요.”
“계획대로 잘 되었나요?”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되었죠. 엄마가 만든 코트들 때문에 ‘무엇을 상상했던 그 이상이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너도나도 추억이 담긴 옷을 가져왔어요. 더 이상 헌 옷 수거함에서 재료를 찾지 않아도 될 정도였어요.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알아요?”
“뭔데요?”
“사람들이 점점 옷을 버리지 않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다들 옷 한 벌 한 벌이 소중해진 거죠. 사실 어떤 옷이던 나랑 같이 보낸 시간 동안 묻은 추억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떠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 가게로 가지고 오는 옷은 있어도 버려지는 옷은 없어진 거죠. 그래서 퀸 엘라 시장님은 헌 옷 수거함은 전부 용도를 변경해서 헌 꿈 수거함으로 만들고, 엄마한테는 공로상을 주었어요.”
“쓰레기를 줄이신 공로가 엄청났던 거군요.”
“아니요, 싸움을 줄인 공로로요.”
“싸움이 줄어요?”
“네, 시비가 붙었다가도 상대방 옷에서 자기가 좋아했던 옷 조각을 발견하고 마음이 풀리는 일이 많았거든요. 윈터 원더랜드 사람들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경우가 많아요. 집 밖으로 나오면 내가 좋아했던 옷 조각이 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하루에 최소 한 두 명은 만나게 되니까요.”
“정말 대단한 업적이네요! 근데,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되나요?”
“물론이죠! 뭔데요, 달링?”
“아까 말씀 중에 헌 옷 수거함을 전부 헌 꿈 수거함으로 바꿨다고 하셨는데요... 헌 꿈 수거함이 뭐예요?”
“글자 그대로 헌 꿈을 수거하는 거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깨진 꿈의 거리’라는 곳이 있어요. 사람들이 부서졌거나, 고장 난 꿈을 가져다 놓는 곳인데... 마을 이름이 뭐더라... 갑자기 가물가물하네... 하여튼 거기서 꿈을 수거해서 여기로 가져다주시는 분이 따로 계시거든요.”
“‘오래된 성당 마을(old cathedral town)’일 거예요.”
지은은 마을의 이름도 알 수 있었고, 꿈을 수거하는 사람의 얼굴도 알 것 같았다. 머릿속 주크박스가 토니 베넷의 <The Boulevard of Broken Dreams>를 틀었기 때문이다.
I walk along the street of sorrow
나는 슬픔의 거리를 걷고 있어
The boulevard of broken dreams
깨진 꿈들의 거리지
지은은 또 영매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서 얼른 덧붙였다.
“아, 여행하던 중에 거기를 지나쳤거든요.”
“그랬군요! 맞아요. 원래 그 마을 가운데 ‘슬픔의 거리’라는 곳에 헌 옷 수거함이 있었는데 수거함을 ‘깨진 꿈 수거함’으로 바꾸면서 거리 이름도 ‘깨진 꿈의 거리’로 바꿨어요. 어쨌든 손님은 우리 가게하고 인연은 인연이네요. 꽤 외진 곳에 있는데 거길 들렀다 왔다니요. 우리 통성명할까요? 난 폴리예요.”
“저는 지은이예요.”
“반가워요 지은 씨.”
“반갑습니다. 그런데 깨진 꿈을 모아서 여기서 파는 거예요?”
“맞아요. 아까 지은 씨가 여기 있는 코트들을 전부 우리 엄마가 만든 거냐고 물었죠?”
“네, ‘예스 앤드 노’라고 하셨어요.”
“<폴리 코트점> 시절에는 전부 엄마 혼자 만들었어요. 그런데 엘라 시장님이 다른 사업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신 거예요. 꿈 수거함에 들어온 꿈들을 팔아 달라는 건데요. 마침 코트 주문만으로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던 때라 엄마는 일이 몰릴 때 엄마를 도와주던 주민 분들을 모아 코트 공방을 꾸렸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공방은 이어지고 있어서 지금 여기 있는 코트들은 공방 직원 분들이 만든 코트예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가게는 이렇게 꿈과 코트를 파는 가게로 확장되었고요. 엄마는 저에게 스토어 운영을 맡겼고 가게 이름을 <폴리폴리 바겐 스토어>로 하고 싶어 했지만, 그건 너무 부끄럽잖아요. 이름이 한 번 들어가는 건 괜찮은데 두 번이나 들어가는 건 왠지 좀 부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앞 자음만 살짝살짝 바꿔서 <홀리 돌리 바겐 스토어>가 된 거예요.”
폴리의 이야기를 홀린 듯 듣고 있던 지은은 갑자기 ‘잠깐잠깐, 여기서 꿈을 팔고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 흐름에서 이제야 위화감을 느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도대체 꿈을 어떻게 버리고, 수거하고, 또 판다는 거지? 그게 다 가능하다고 쳐도, 다른 사람이 버린 깨진 꿈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더 이상하잖아?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제가 좀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요. 그러니까... 꿈이라는 게 형태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폴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어다.
“형태가 없다니요? 그럼 들어오면서 본 것들은 다 뭔데요?”
“들어오면서요?”
도대체 뭘 봤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지은의 표정을 보며 폴리는 답답한 듯 말했다.
“맙소사. 꿈하고 코트 말고 여기서 달리 뭘 팔겠어요. 그러니까, 지은 씨가 홀리 돌리 바겐 스토어에 들어와서 본 모든 게 이 방의 코트들만 빼고 전부 꿈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수리를 마친 꿈이죠. 수리 중인 꿈은 아직 진열해 놓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미니어처 다이애건 앨리 같이 빼곡한 진열장들에 잔뜩 놓여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던 알록달록한 것들이 전부 꿈이었단 말이야? 혼란스러워하는 지은을 보면서 폴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달링, 사랑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건 알면서 파는 게 꿈이라는 건 몰랐단 말이에요? 하하하, 영매가 아닌 건 확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