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돌리 바겐스토어 (1)

by Angela 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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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안개 속으로 들어오니 놀랍게도 전혀 흐리지 않았다. 하늘은 하얀 포말에 덮여있지만 햇살을 머금은 벌꿀 같은 밝음이 고운 포말과 어우러지며 보드라운 빛으로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놀랍게도 밝음을 뿜어내고 있는 것은 태양이 아니라 넓게 펼쳐진 노란 장미꽃 밭이었다. 마치 한 무리의 아기 태양들이 꼬물거리고 있는 대형 신생아실 같았다. 이번엔 머릿속 주크박스보다 먼저 지은이 돌리 파튼의 <Yellow Roses>를 불렀다.


Yellow roses, the color of sunshine

노란 장미들아, 햇살의 색깔이여!

You loved me at one time, why did you have to go

날 사랑했는데, 왜 떠나야만 하니?

Yellow roses, are you sending your new love

노란 장미들아, 새로운 사랑을 찾는 거니?

My bright yellow rose buds, oh, I still love you so.

내 눈부신 노란 봉오리들아, 난 아직도 이렇게 널 사랑하는데


‘여기는 돌리 파튼 존이구나.’


지은은 기대에 찬 얼굴로 노란 아기 장미들을 내려다보았다. 지은의 오랜 스타가 이번엔 어떤 이름의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은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들어가도 되겠니?”


빽빽한 장미 밭에는 따로 길이 없었다. 가시에 찔릴까 걱정도 되었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면 장미꽃 밭을 가로지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지은의 물음에 아기 태양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송이 두 송이 고개를 흔들기 시작하자 장미꽃 밭은 금새 황금물결이 되어 너울거렸다. 지은은 눈부신 물결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걱정했던 가시 대신 여리고 부드러운 촉감이 지은의 다리를 감쌌다. 지은은 황금물결 속을 한 마리의 붕장어가 된 듯 유려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이번에도 노래 한 곡이면 돌리 파튼과 꼭 닮은 사람이 있는 곳에 도착하겠지.


지은은 고민할 것도 없이 <I Will Always Love You>를 부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알고 있지만 원곡자는 돌리 파튼이다. 대중매체를 통해서만 팝송을 접했다면 지은 역시 돌리 파튼의 원곡을 들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만 뻗으면 맛있는 과자를 잡을 수 있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의 집처럼 손만 뻗으면 LP가 잡히는 이혜원 월드에서 자란 지은은 돌리 파튼의 원곡을 먼저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먼저 들었던 버전은 이혜원 버전이었다. <I Will Always Love You>는 아기 지은을 재우던 혜원씨의 자장가였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면서부터는 방과 후에 페이퍼 문 구석에서 숙제를 하곤 했는데 혜원씨가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를 트는 날에는 달콤한 낮잠에 빠져 숙제를 망치곤 했다. 원곡도 아기 때 각인 된 토닥토닥 리듬과 너무나 딱 맞아 떨어지는 데다가 돌리 파튼의 목소리도 너무나 아늑하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지은은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 저녁 루틴이었던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천 년의 잠도 깨울 수 있을 것 같은 휘트니 휴스턴 버전을 처음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휘트니 휴스턴이 이 노래로 만들어 낸 전설적인 기록들은 충분히 경이롭지만 들을 때마다 어색한 건 아직까지도 어쩔 수가 없다. 반면에 돌리 파튼 버전은 마치 나만 아는 비밀 이야기인 것처럼 소중해졌다. 자신을 부드럽게 맞아준 아기 태양들에게 지은은 혜원씨처럼, 돌리파튼처럼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I hope life will treat you kind

삶이 너에게 친절하길

And I hope that you have all that you ever dreamed of

그리고 원하는 모든 걸 이루길

Oh I do wish you joy and I wish you happiness

진심으로 바라, 기쁘고 행복하길

But above all this

하지만 이 모든 것 보다 더 바라는 건

I wish you love

사랑받길

I love you

사랑해

I will always love you

영원히 널 사랑할게

I will always love you

영원히 널 사랑할게

I will always love you

영원히 널 사랑할게

I will always love you

영원히 널 사랑할게


나른한 리듬에 맞춰 천천히 까닥이던 아기 태양들의 고갯짓은 포근한 노랫소리에 맞춰 점점 잦아들었다. 속삭이듯 노래하던 지은이 마지막 음에서 조심스럽게 숨을 떼자 쌔근거리는 아기 태양들의 숨결이 공기 중에 보드라운 잔물결을 일으켰다. 지은은 막 잠이 든 아기 태양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끝을 들고 장미밭에서 빠져 나왔다. 어느새 눈앞에는 앙증맞은 홀리돌리 바겐스토어가 나타나 있었다.


‘대박. 돌리 파튼, <The Bargain Store>, <Holy Jolly Christmas>가 합쳐졌네.’


지은이 감탄하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렸다. 돌리 파튼과 똑같이 생긴, 그러나 가슴에 ‘스토어 매니저 Polly D. Norton’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이 지은에게 외쳤다.


“오픈했어요. 안으로 들어와요!”


예상은 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더 풍성한 노란 장미 다발 같은 금발 머리에 압도된 지은이 머뭇거리자 폴리가 말했다.


“왜 안 들어와요, 달링? 혹시 돈이 없나요? 걱정 말고 일단 들어와요.”


“아, 네.”


“우리 가게 물건은 다 부담 없는 가격일 거예요. 왜냐하면,”


“사랑만 있으면 다 살 수 있죠?”


“어머나, 달링!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그냥, 알아요.”


“아이 참, 그렇게 처음 오시는 분들한테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야.”


“네?”


“우리 가게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내가 직접 깜짝 놀라게 해 드리고 싶으니까 먼저 이야기하지 말라고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 붙잡고 신신당부를 했단 말이야. 누구야 도대체, 아니, 그냥 홀리돌리 바겐 스토어에 가보라고만 하면 되지.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서 제일 놀라는 게 사랑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인데 그걸 스포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김빠지게. 대체 누구야? 누구한테 들었어요?”


“아, 아니... 저기... 죄송해요. 괜히 제가...”


지은은 ‘사랑 결제 시스템’을 누구한테 들어서가 아니라 간판을 본 순간 머릿속 주크박스에서 <The Bargain Store>의 코러스가 터져 나온 것이지만 이것을 폴리에게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폴리의 김빠진 표정에 미안해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코러스가 반복됐다.


The bargain store is open, come inside

바겐 스토어가 열렸어요, 들어오세요

You can easily afford the price

물건 값은 부담스럽지 않을 거예요

Love is all you need to purchase all the merchandise

사랑만 있으면 모든 걸 살 수 있답니다

And I can guarantee you'll be completely satisfied

단언컨대 완전히 만족하실 거예요


지은은 투덜거리는 폴리의 뒤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심플했던 외관과는 달리 가게 안은 빼곡하고 복잡했다. 지금까지 지은이 경험한 윈터 원더랜드보다는 살짝 어둡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 알록달록한 온갖 물건들로 가득한 진열장들이 지은을 압도했다. 마치 해리 포터를 따라 다이애건 앨리에 들어 온 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지은은 어깨를 움츠리고 조심스럽게 폴리를 따라 빽빽한 진열장 틈바구니를 비집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자~ 뭣부터 구경 할래요, 달링?”


“음... 글쎄요...”


“그러면! 코트부터 보여드릴게요. 걱정하지 말아요, 안사도 되니까. 이미 이렇게 예쁜 망토를 입고 있는걸. 코트가 우리 가게의 시그니처라서 처음 오신 손님들에게는 항상 코트의 방부터 보여드린답니다. 머리 조심하세요!”


‘코트의 방’으로 통하는 문은 굉장히 낮고 작아서 개구멍에 문을 달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폴리와 지은은 허리를 잔뜩 숙이고 안 쪽으로 들어갔다.


“짜잔!”


지은은 폴리의 목청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코트의 방은 어두스름했던 미니어처 다이애건 앨리와는 다르게 햇빛이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햇빛보다 더 강렬하게 지은을 압도한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색깔들과 무늬들이었다. 코트의 방을 채우고 있는 코트 중에 한 가지 색깔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코트가 퀼트로 만들어졌는데 패치 하나하나가 다 다른 색깔과 무늬인 것 같았다. 갑자기 너무 많은 시각 정보가 눈으로 들어오니 지은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굉장하죠? 우리 코트의 방에는 같은 코트는 단 한 벌도 없어요. 세상에서 단 한 벌 뿐인 코드들이죠. 그런데 더 굉장한 게 뭔 줄 알아요?”


“혹시... 저 패치들도 하나하나 다 다른가요?”


“또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내 가만두지 않을....”


“아니요, 아니요, 누구한테 들은 게 아니라요.”


폴리는 이번엔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았다. 지은은 허둥대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누가 알려준 게 아니고요... 그냥 아는데요. 어떻게 아냐고 물으시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나, 달링, 후 아~~~유? 오 마이 갓! 혹시 영매예요?”


“영매요? 제가요?”


“아니, 들은 적도 없다면서 가장 중요한 걸 어떻게 그렇게 딱딱 알아 맞히냐고요. 오 마이 갓! 혹시 지금 우리 엄마랑 같이 있어요?”


그제야 지은의 코트의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제목도 가사도 명확하지 않게 떠오르지 않지만 머릿속을 맴맴 돌면서 영매 같은 말을 내뱉게 한 노래가 툭 모습을 드러냈다. 돌리 파튼의 <Coat of Many Colors> 말이다.


Mama sewed the rags together

엄마는 오래된 천 조각을 이어 붙였어요

Sewin' every piece with love

한 조각 한 조각을 사랑으로 꿰맸지요

She made my coat of many colors

엄마는 저에게 알록달록한 코트를 만들어주셨어요

That I was so proud of

저는 제 코트가 너무나 자랑스러웠어요


Winter Wonderland _the bargain store.jpg ChatGPT가 그려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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