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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진 Sep 22. 2019

저물어가는 것들.

시들어가는 것들은 모두 아쉽다.


꽃을 참 좋아한다.

꽃은 결국 시들어버리기에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싱싱하던 꽃들이 점차 시들어 갈 것 같은 기색을 보이면 예쁘게 말려 벽에 붙여두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꽃은 시들어가는 매력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계절마다 변하는 나무나 풀을 지켜보는 일들도 좋아한다. 부들부들 여린 잎과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 봄, 제일 무성하고 청명하게 자라나는 여름이라던지, 바알갛게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내 눈낮이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가을과 모든 잎들을 바닥으로 내려보내고 잠자기 시작하는 겨울까지도. 내 눈에는 저물어가지 않았고 단지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매력만이 보였을 뿐이다.


평소와 같은 하루이고 모든 것들은 언제나 그 자리인데, 문득 다른 시각이 생기는 날이 있다.

나는 아직 그대로인데 변해가는 나의 연인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 때. 때에 따라 변하는 자연처럼 내가 막을 방도 없이 점차 저물어가고 시들어가는 이 앞에 무력함을 느낄 때.

언제나 그렇듯 협탁 위에 놓아둔 화병의 물을 가는데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는 꽃이 눈에 띄었다. 사실 이틀 전부터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얼음도 넣어보고 설탕도 넣어보고 줄기를 다시 잘라보기도 하며 하루 그다음 하루 더 연명하고 있던 꽃이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이 꽃이 생기를 얻기는 힘들겠구나.' 괜한 서글픈 기분에 평상시와는 다르게 꽃을 말리지 않고 곧장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사람 사는 일은 자연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저물어가고 시들어가는 것들만 보이기 시작했다.

막고 싶어도 막을 방도 없는 것들.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것들. 눈에 훤히 보이는 결과를 부정하며 부러 눈을 감아버리는 것들.

결국에는 앙상하게 서있는 겨울나무처럼, 시들고 말라버려 조그만 손짓에도 파삭하고 바스러져버린 꽃잎처럼 자연스레 다가온 이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내겐 봄 같았고 여름 같았던. 언제든 더듬어 볼 수 있는 추억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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