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야 할 시간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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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을 하면 순간 현실감을 잃는다. 평소와는 다른 것들을 하고 먹고 본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던 사진첩은 며칠 사이에 꽉 차버린다. 찾을 수 없던 사랑은 처음 만난 사람과의 하루로 시작된다. 그렇기에 여행은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긴 여행은 조금 다르다. 짧은 여행을 이어 붙이면 동화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수필이 되어버린다. 오히려 지독한 현실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일상이 나의 여행이 되듯이 나의 여행은 그들과의 일상이 된다. 일상이 지속되면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지를 생각한다. 마침내 그리움에 빠지는 그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때문에 오랜 여행을 좋아한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오랜 여행을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래됐다. 인생이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듯 그 생각 이후에도 몇 번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끝이 다가오니 그런 생각을 다시금 했다.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다가 튕겨져 나가거나 아니면 녹슬어 더는 굴러가지 못할 때쯤이나 되어야 오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여행을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관문은커녕 시야가 넓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하며 ‘여기는 왜 왔어요?’라는 질문을 수 없이 받았지만 아직도 대답이 어렵다. 내 마음은 작은 내 키보다 훨씬 작다.
비 오는 공원을 혼자 걸었다. 특별할 것 없는 공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끝에는 바다가 있었다. 덕분에 비 오는 바다를 걸었다. 날씨가 꽤 추웠는데도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낚싯대를 잡고 서 있었다. 그 뒤에 자리를 잡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낚시를 바라봤다. 고양이 몇 마리는 아저씨들 옆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기대하며 울었다. 아저씨 한 명은 고양이한테 손짓을 하며 저리 가라고 화를 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는데 방해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튀르키예 빗물은 무슨 맛인가 궁금해서 입을 벌리고 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내 곁에 앉았다.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양이는 가지 않고 옆에 누워있었다. 자리를 옮기려고 인사를 하고 걸었는데 고양이가 졸졸 따라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른 나라 고양이도 그렇지만 특히 튀르키예 고양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오는 편이다. 한국 고양이들은 다가오기는커녕 하악질을 하고 도망가버린다. 분명히 비슷한 종일텐데 왜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나는 고양이마저 질투해 본 적이 있다. 연인이 내게 주는 관심보다 고양이한테 쏟는 애정이 더 컸다는 너절한 이유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때쯤 나는 만물의 영장의 자리를 포기했던 것 같다.
“에이 여기 아무것도 없네. 다른 데 구경 가자!” 모르는 사람의 앳된 목소리였다.
비 오는 튀르키예 바닷가에서 뜬금없이 한국어가 들려왔다.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라고 발끈하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없긴 했다. 잡히지 않는 생선과 떠나지 않는 고양이 정도만 있었다. 시계탑 비슷한 것이 있긴 했는데 그걸 보러 여기까지 오는 건 이상하긴 했다. 그래도 막상 혼자 잘 놀고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심술이 났다. 한국어를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알바니아인이나 그리스인이었으면 무슨 말을 하든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나는 연구가 좋아요.” 하품하고 있는 고양이에게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과 ‘좋아요’ 사이 한 어절을 채우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인간은 대학을 다니며 좋아하는 것을 찾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입 밖으로 말하는 것은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라 굳이 수많은 다른 단어를 대며 다른 얘기를 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만 선택해 왔던 삶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부끄러움은 더 커졌다. 누구는 전문직 명함을 내밀고 누구는 청첩장을 건네는 사회에서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연구가 좋아서 돈도 없고 나이도 많지만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같잖은 이해와 놀라움과 동정과 무관심을 보고 싶지 않았다. 발칸 반도에서의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고 그들에게서 배운 짧은 언어로 내가 사랑하는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끝이 두려워요.” 이제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고양이에게 다시 한국말로 말했다.
늘 끝을 생각하는 못된 버릇은 여전했다. 나는 모든 것의 끝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오늘이 가면 더는 당신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끔 느낀다. 장례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식이나 졸업식이나 심지어 함께 하는 여행이나 밥 약속에서도 그렇다. 늘 머릿속 어디선가 모든 생각 앞에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붙이고 만다. 이 식사가 끝나고 나면 ‘현실적으로’ 꽤 바쁘고 또 바빠야 할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현실적으로’ 연인이라거나 가족이라거나 하는 더 중요한 것들에 묶여 살 것이 분명했다.
관계에 홀로 마침표를 찍는 것은 언제나 벅찬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은 그런 것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나는 언제나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인간에게 미국에 유학을 간다는 것은 거의 사형 선고나 비슷한 것이었다. 사형과 다른 점이라면 스스로 자진했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곳에 가서도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고 인연을 만들어갈 것을 알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소중했던 관계가 단절된다는 두려움은 여전했다.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을 말로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듣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인 점이 조금 민망했지만 나는 확실한 한국어로 내 감정을 입 밖으로 뱉어 냈다.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확실히 후련한 일이었다. 한국어를 듣지 않고자 발칸 반도로 향하는 티켓을 끊어야만 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알바니아에서는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글을 쓰는 이유를 말했다. 코소보에서는 예쁘다는 말을 했고 알바니아에서는 아프다는 말을 했다. 그리스에서는 힘내라는 얘기를 했고 터키에서는 마침내 좋아함과 두려움을 말했다. 아는 단어가 줄어드니 말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 그런 기분으로 이제는 한국어를 말했다.
“이제는 돌아가도 될 것 같아.” 짝사랑에게 고백하고 차여버린 기분으로 고양이에게 말했다. 그렇게 여행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