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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이스탄불 (1)

여행과 노동의 가운데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야간버스만큼 논리적인 것은 없다. 낮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고 그저 잠자고 일어나면 원하는 곳에 도착해 있다. 숙박비와 교통비를 합쳐서 해결하는 기분이라 합리적이다. 특히 튀르키예처럼 땅덩이가 커서 이동하는 데만 한나절이 걸리는 곳은 더 그렇다. 문제라면 몸이다. 비닐봉지처럼 구긴 몸으로 새우잠을 자며 어떻게든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좁은 공간에 있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야간버스를 탈 때면 가끔 노예선에 갇힌 기분이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하는 일뿐이다.


야간버스나 공항 노숙에는 이골이 났지만 다시 야간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삼십 대에 접어든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벌써 삼이라는 숫자가 이건 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튀르키예 여행지를 검색하면 늘 나오는 눈보다 흰 석회 온천이라는 ‘파묵칼레’나 열기구가 하늘을 뒤덮은 ‘카파도키아’를 가려면 오랜 시간 버스를 타야 했다. 대서양을 건너오기 전부터 열기구 이야기만 하던 현석도 잠잠해졌다. 적당히 서로 눈치를 보다 행선지를 수도인 ‘이스탄불’로 변경했다. 마침 저가 항공권이 있어 항공기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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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은 끝과 같은 도시다. 아시아의 끝이자 유럽의 끝이다. 도시 자체가 가운데 흐르는 바다를 두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의 신과 인간처럼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나와 현석은 10년 전에 이스탄불을 마지막으로 유럽 여행을 마쳤다. 청춘 행세를 해보겠다고 있는 돈 없는 돈 모아 다닌 여행보다는 고행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의 여행도 같은 곳에서 마치게 되니 굳이 지리학적 이유를 따지지 않아도 이스탄불은 끝과 같은 도시였다.


처음으로 고급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숙박비에 돈 쓰는 것을 참 싫어하고 호텔보다는 호스텔이 훨씬 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와이파이가 필요했다. 대학원 입학을 위한 화상 면접이 몇 개 잡혀 있었다. 시차 때문에 면접은 새벽에 시작했다. 새벽에 면접을 보고 긴장이 풀려 깊은 잠을 자고 나면 점심시간에 훌쩍 넘었다. 현석은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없었고 나는 근처 식당에서 대충 배를 채우고 다시 면접 준비를 했다. 논문을 읽다가 저녁이 되어 어둠이 깔리면 현석과 만나 밥을 먹고 동네를 구경했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면접을 보았다. 디지털 유목민이 이런 건가 싶었다. 이런 기묘한 여행과 노동의 중간에서 모든 이스탄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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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원체 여행을 게으르게 하기도 하고 남들이 다 봐야 한다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다. 쓸데없이 기억력이 이상한 쪽에서 좋은 편이라 전에 왔던 이스탄불이 머릿속에 남아 있기도 했다. 다만 굳이 날씨도 좋은 날에 방 안에서 혼자 면접 준비를 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면접 준비라고 해봐야 논문을 읽다가 집어던지거나 군대에서 삼 년 반을 지낸 내 선택을 후회하거나 입을 푼답시고 로비에 내려가 매니저와 영어로 대화하는 게 다였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시간이 남았다.


마침 연초라 캘린더에 생일을 정리했다. 버릇처럼 외워둔 몇몇의 생일이 있다. 잊어버려야만 하는 생일도 있지만 잊어버리려 노력할수록 어째 마음에 새겨지는 법이다. 기억해야 하는 일련의 생일들을 굳이 하나하나 캘린더에 입력하는 것은 꽤 오래된 버릇이다. 그들의 생일이라고 특별한 걸 하는 건 없고 기껏해야 메시지나 편지나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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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도 굳이 입력해 둔다. 사실 나는 내 생일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명절도 매한가지다. 좋아하는 날이 없다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날을 만들기로 했다. 문제는 그날을 언제로 하냐는 것이었다. 그날은 우연한 날이었다. 아주 적당한 온도와 습도의 낮을 보내고 적당한 채도와 명도의 밤에 튀김만두를 주문하고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있던 적이 있다. 사장님이 기독교인이었는지 찬송가가 흘러나왔고 나는 신과 전혀 접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때 오늘은 좀 좋은 날이라는 생각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원체 모든 것은 이유 없이 시작된다. 그래서 그날을 좋아하는 날로 정했다.


좋아하는 날은 일 년에 하루면 충분했다.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런 좋은 날들을 몇 장이고 추억이라는 실로 기워 하늘에 너는 것이었다. 누가 다 말랐다고 치우기 전까지는 바닥에 누워 좋은 날들만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빨래터의 어린아이처럼 빨랫줄에 걸린 이불 밑으로 들어가 하늘을 가린 이불이 쉽게 마르지 않기를 바랐다. 서로의 감정이 말라 바삭해질 때는 비가 왔으면 했다. 빗소리가 들리면 비가 오는지 모르는 것 마냥 시치미를 뚝 떼고 이불을 걷지 않으리라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럼 보통은 상대방이 호들갑을 떨며 이불을 접어 어딘가로 도망쳤다. 사라진 좋은 날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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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살짝 내리는 밤에 ‘블루 모스크’를 보러 갔다. 모스크에서는 기도 소리인지 경전을 읊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다. 닫힌 곳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는 무섭기만 했다. 발길을 돌려 근처의 다른 모스크로 향했다. ‘아야 소피아’에서도 블루 모스크처럼 기도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슬람 신도가 되려면 말도 안 되게 부지런해야 될 것 같았다. ‘아야 소피아’는 ‘성 소피아 대성당’으로도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는 동로마 제국의 정교회 건물이었다.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었다. 신성하고 거룩한 것들의 아픔을 느껴야 하는데 머릿속에는 ‘문명 5’의 종교 싸움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성 소피아 대성당’을 위대한 선지자를 뽑으려고 게임에서 건설하며 알게 된 것은 게임의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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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한창이었다. 남자 신도들만 맨 앞으로 갈 수 있었고 외국인과 여자들은 멀리서 그들을 지켜봤다. 건물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아랍어가 한 글자씩 여기저기 크게 써져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자도 아름답게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기도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도망쳐 나왔다. 신앙에 대한 거부감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발냄새가 너무 심했다.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 예의 때문에 다들 신발을 벗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발냄새와 이슬람 교인들의 발냄새가 섞였다. 늘 그렇듯이 다양한 것은 유일한 것보다 더 파괴적인 시너지 효과를 냈다. 발냄새 때문에 토할 뻔했다는 뜻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도소리를 들으며 밤길을 걸었다. 몇 시간 후면 다시 면접을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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