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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셀축 (1)

세 번 마주치면 운명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하루에 세 번 마주치면 운명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책에 쓰여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말이었다. 아니면 늘 그랬듯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번듯한 남자 어른과의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타인에게 말을 먼저 거는 순간은 많지 않았지만 우연이 겹친 운명을 느낄 때면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간이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는 세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 무리는 나와 현석이었고, 다른 한 무리는 튀르키예 여자와 한국 남자라는 흥미로운 조합이었고, 다른 하나는 앳된 세 남자였다. 튀르키예 여자와 한국 남자는 특이하게도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시작된 사랑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아쉽게도 오늘 세 번 마주친 무리는 그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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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까부터 계속 봤지? 어디에서 왔어?” 버스정류장에서 걸터앉아 있던 내가 물었다.


“튀르키예 사람이야. 이즈미르에 있는 에게 대학교 신입생이야!” 세 명의 튀르키예 사람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푸르칸이 말했다.


푸르칸은 해리 포터를 닮은 간호학과 새내기였다. 그리고 ‘셀축’에 있는 모든 유적지에서 나와 눈이 계속 마주친 사람이었다. ‘이스마일’과 ‘마흐메드’는 같은 학교 경제학과 새내기라고 했다. 학기 시작하기 전에 들어야 하는 영어 수업을 함께 들으며 친해져서 여행을 온 사이였다. 그들은 어쩌다 보니 영어 수업에서 배운 회화를 써먹을 수 있는 교보재로 영어를 못하는 동양인 둘을 만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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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축’은 ‘에페스’라는 고대 도시로 유명한데 성경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오래됐다고 한다. 그들이 살고 숨 쉬었던 모든 석조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남아있지 않은 것은 사람뿐이다. 노래하고 먹고 춤추었을 극장과 눈물 흘리며 기도했을 교회는 며칠 보수만 하면 다시 살 수 있을 정도로 형태가 잘 남아있다. 누군가 달리다가 넘어졌을 대로와 한숨을 쉬며 하루를 보냈을 집들도 사람 흔적 빼고는 다 남아있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이도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설명이 있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한국 팀과 중국 팀이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들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들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면 현석과 나는 굳이 영어로 대화했다. 그룹을 옮겨 다니며 지식 하이재킹을 통해 투어를 다니다가 ‘켈수스 도서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멈춰야만 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집에서 나와 대로를 걸으며 도착한 곳이 기껏 도서관이었을 몇 천년 전의 청춘들을 생각하면 애석하기는 했지만 도서관은 고대 도시 유적 중 가장 화려한 곳이었다. 그야말로 공부할 맛 날 것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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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칸과 친구들은 그 도서관 앞에서 고양이와 장난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고대 공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흐메드에게 얼굴을 비비던 검은 고양이는 내게 쫄래쫄래 걸어왔고 당당하게 내 무릎에 앉았다. 가르랑거리던 고양이는 심심했는지 무릎 위에 서서 무대 중앙을 바라봤다. 뭐가 있나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노래나 부를까 싶었는데 고양이가 먼저 야옹거려서 선창을 뺏겨 고양이나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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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만난 세 명의 튀르키예인과 짧은 영어로 많은 대화를 했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버스를 두 번이나 탔었다.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아직도 우리 교과서에 남아있는지 그리고 그 말이 정확한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튀르키예 교과서에는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순박한 농부를 닮은 ‘이스마일’은 튀르키예와 한국은 형제라고 했고 괜찮다면 저녁을 같이 먹고 나머지 여행을 함께하자고 했다.


그들이 추천해 준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었다. 케밥과 토마토와 감자튀김과 밥을 한데 섞은 비빔밥 같은 느낌의 음식이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튀르키예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절대 ‘이스마일’과 ‘마흐메드’가 내가 이십 대 초반일 것 같다고 말해서는 아니었다. 배부르게 저녁식사를 하고 쉬린제 마을로 향했다. 버스에 돈을 내거나 위치를 물어야 할 때는 ‘푸르칸’이 계속 도와줬다. 튀르키예 사람이 튀르키예 언어를 하는 것보다 당연한 것은 없을 테지만 확실히 멋져 보였다.


‘쉬린제 마을’은 말 그대로 작고 아담한 마을인데 와인이나 도자기 같은 것을 만드는 장인들이 많다고 했다. 친구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마을을 구경했다. 튀르키예에 가면 꼭 가야 할 곳이라고 별표 몇 개를 쳐 둔 블로그는 튀르키예에 온 적이 없던 것이 분명했다. 별 거 없는 곳이었다. 이곳저곳에 양조장과 와인샵이 있었다. 근처에서 시음을 할 수 있었는데 한 잔 한 잔 받아먹다 보니 얼굴에 홍조가 돌았다. 산딸기로 만든 와인을 사고 교회를 구경했다. 술을 사서 교회에 들어가는 게 불경한 것인지 잠깐 고민했지만 와인을 예수님 피라고도하는데 괜찮지 않나 싶었다. 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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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칸’은 따뜻한 튀르키예 전통음료를 사주며 이즈미르에 돌아가면 꼭 ‘이즈미르 봄바’라는 빵을 먹어보라고 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포옹을 하고 돌아온 이즈미르에서 그들의 말대로 ‘봄바’라는 빵을 샀다. 우리네 호빵같이 생긴 느낌의 빵이었는데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야식으로 산딸기 와인과 초콜릿 호빵을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하필 숙소에는 와인 따개가 없었다.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기초교육을 담당한다는 한 명과 그래도 논문깨나 써서 유학길에 오른다는 한 명은 결국 젓가락으로 와인을 따지 못했다. 반 정도 부순 코르크 앞에서 절망하며 먹은 ‘이즈미르 봄바’는 너무 달아 딱 한입 먹고 양치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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