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흰 교수가 하얀 칠판에 무언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시험지를 다 채우고 칠판을 바라봤다. 총원 몇 명 결원 몇 명 현재원 몇 명이라는 글씨가 도드라졌다. 늘 시험을 보고 나면 서둘러 제출하고 허기를 채우러 가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늘이 내 마지막 시험이었다. 앞으로 나는 총원이라는 글자 안에 들어가지 못할 터였다. 낡은 목소리가 시험이 끝났다는 소식을 알렸다. 나는 시험지를 제출하고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앉아 있었다. 나는 가쓰오부시처럼 바스라졌다. 그렇게 졸업을 했다.
괜히 학교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옛날 생각을 많이 했다. 사 년의 시간은 짧지 않았고 그리워할 것이 많아 좋았다. 떠나간 사람들도 많았다. 누군가 떠나면 남아있는 자들은 외로워진다. 이제는 내가 이곳을 떠날 차례였고 누군가 나를 외로워해주었으면 싶었다. 목이 타 자주 가던 카페에 들렸다. 항상 마시던 차가운 아메리카노 대신 밀크티를 처음 시켜 보았다. 마지막 날이니 변화를 주고 싶었다. 밀크티는 내 입맛에 너무 달아 몇 입 빨아올리고는 버렸다. 역시 사람은 익숙한 것에 삶을 묻어야 했다.
새내기 때 시험이 끝나면 늘 가던 잔디밭에 혼자 앉았다. 나는 가난했다. 그 감정을 수도 없이 느꼈다. 지갑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정신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 무엇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늘 열등감에 진득한 패배감을 찍어 먹으며 살았다. 다행히 나는 학교에서 마음에 저축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방법은 간단했다. 가난하지 않은 당신들을 좇았다.
화를 내는 방법을 고민했고 손을 내미는 이유를 배웠다. 고시에 떨어진 당신에게 새벽 두 시에 술을 먹고 토를 하는 것을 배웠고 밴드 공연을 끝내고 미친 듯 웃는 당신을 따라 해 보기도 했다. 피곤하게 도서관을 나서며 미래를 말하는 법을 배웠고 옛 친구를 소개하는 순서를 알았다. 지식을 배우진 못했다. 수업을 들어가지 않아 경고 메일을 받은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내가 조금 더 인간답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십이 월의 끝을 잡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쯤 청춘에게 안녕을 고했다.
집에 가는 길에 내 청춘을 채워 준 당신들에게 편지를 쓸 종이를 골랐다. 편지에 글자를 눌러 담으며 이 중 몇 개나 당신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에 대해 고마워하는 것을 창피해했다. 그 고리타분한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두어 명에게라도 주면 다행일 것 같았다. 닿지 않을 편지를 완성하고 인스턴트 홍차를 한 잔 내렸다. 나는 졸업을 할 즈음이면 모든 것이 완성되어 있을 줄만 알았다. 완성은커녕 반성할 것들만 줄지어 섰다. 앞으로의 인생도 비슷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