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끝을 생각하는 못된 버릇은 여전했다

by 석지호

핸드폰 알람을 진동으로 바꿔 두고 버스에 올랐다.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바쁘게 각자의 삶을 살던 당신들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다행히 별 말 없어도 어색함이 흐르지는 않아 할 말을 쥐어짜내 당신들 앞에 걸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머릿속에 가끔 울리는 허튼소리와 그에 대한 핀잔 몇 가지를 입에 올렸다. 사회적인 대화를 할 필요도 없었고 유익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적당한 침묵 속에서 버스는 끝에 멈췄다.


바닷가를 돌아다니다가 모래밭에 멍청하게 앉았다. 갈매기인지 기러기인지 항상 이름이 헷갈리는 하얀 새가 날아다녔고 파도는 늘 그렇듯이 발 근처에서 찰박거렸다. 따듯한 닭강정과 차가운 커피를 입에 번갈아 넣으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나는 문득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고 바다 공기와 함께 그 말을 뱉었다. 따듯한 위로도 없었고 차가운 비평도 없어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당신은 한숨을 피웠고 다른 당신은 바다를 노려봤다. 또 다른 당신은 사진이나 찍자고 말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조금 걸었다. 당신 중의 한 명이 미래가 걱정된다고 넌지시 말했다. 다시 아무도 긍정도 부정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속내를 게워냈다. 아무래도 짠 바람이 입에 들어가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별 다른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니 허기가 졌다. 수산시장에서 수많은 생선들과 눈을 마주치며 놀다가 회 한 접시를 시켜 먹었다. 회 한 점에 술 한 잔을 마시며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부질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옛날 추억을 가져왔다. 그리고 매운탕이 나올 즈음엔 조금 진지한 이야기도 안줏거리로 삼았다. 어찌 보면 술이란 것은 참 대단한 것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은 미래와 철학과 낭만을 말해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또는 걱정과 슬픔과 우울을 말해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빈 술병 몇 개와 붉어진 얼굴은 면죄부와 같았다. 적어도 취해서 말한 행복과 희망과 기쁨 같은 것은 아무도 비웃을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말한 것을 퍽 진지하게 들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화장실 줄을 기다리던 중에 이번 여행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늘 끝을 생각하는 못된 버릇은 여전했다. 나는 또다시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생각 앞에 붙이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다시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꽤 바빴고 또 바빠야 할 것이 분명했고. 현실적으로 연인이라거나 가족이라거나 하는 더 중요한 것들에 묶여 살 것이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았다.


술에 취한 것보다 마지막이라는 감정에 취한 것이 더 어지러웠다.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언제나 벅찬 것이었다. 하지만 어른은 그런 것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나는 언제나 나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술이 조금 남아 당신들과 잔을 몇 번 더 부딪힐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나 다음 먹을거리나 다음 볼거리를 의식적으로 힘주어 말했다. 취한 사람은 다음을 말할 수 있었다. 술에서 깨었을 때 다음은 없을 것이라고 되뇌더라도 적어도 오늘은 그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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