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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Ep.03

by 부지러너


오랜만에 업계 사람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지인도 있었고 처음 뵙는 분도 있었다.
각자가 왜 이 씬에 오게 되었는지
어디서 무엇을 시작으로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론 어떤 계획과 미래를 그리는지 이야기했다.

각자의 인생과 커리어에 녹아있는 삶의 비전과 철학에
공감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응원의 눈빛과 격려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자리의 뒤끝이 씁쓸했다고 느꼈는데,
그 이윤 각자의 꿈과 계획들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의 나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사연 배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갔던 군대가 제일 힘들었고
내가 다녔던 학과가 제일 시험이 어려웠고
내가 다니는 회사가 제일 힘들고
내가 맡은 업무가 제일 많고
내가 키우는 아이가 제일 유별난 것
원래 사람은 각자의 경험이 가장 진하게 남는다는 것을 알지만,
문득 생각해 봤다. 왜 인생은 항상 고통인가.

나는 평생 이것을 위해 살았다.
오랜 직장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 것도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것도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한 것도
밤낮없이 공부하며 좋은 대학에 간 것도
모두 미래의 나를 위해 살았던 것이다.

오늘도 사실 '내가 OO만 있으면', '내가 이렇게만 된다면'이라는
가정의 늪에 빠져서 만져지지 않는 미래에 지금을 갈아 넣는다.
계획적인 삶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열한 삶이
굉장히 가치 있는 것임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점점 더 나에게 남는 지난 과거는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고
'그때 참 좋았었는데' 돌이킬 과거는 줄어드는 느낌이다.

결국 난 과거도 현재도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에
내가 달성할 찬란한 미래의 나에게 그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따지고 보면 미래에 사는 나 자신에겐 그저 고통스러운 현재를 반복하고 그때의 나에겐 지금이 힘들었던 과거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또 한 번 개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난 오늘, 출근 전 미세먼지 없는 상쾌한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을 사진에 담고 땀 흘려 달리던 순간을 기억하고, 출근 전 뒤척이는 딸에게 귀여운 뽀뽀를 날려주며 저녁에 재밌게 놀자고 속삭였던 것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자 삶의 이유고 의미임을 자각하려고 한다.

출근길 버스에서 지금의 흩날리는 생각들을 꾹꾹 눌러 담아 적고 있는 이 순간도 언제든 다시 돌아와 좋았던 순간으로 기억할 수 있게 잔상을 깊게 남기려 한다.

미래대신 과거대신 지금을 사는 나는 더없이 자유로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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