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는 흔히 ‘좋은 일을 하는 사람’, ‘봉사 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사회복지사의 노동을 희석시키고, 결과적으로 사회복지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를 낳는다. 사회복지사는 선의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노동자라면 마땅히 적정한 대가를 받아야 하며, 동일한 노동에는 동일한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사는 좋은 사람이기 전에 노동자다.
필자가 굳이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복지사를 ‘좋은 사람’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의 노동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보상 없이 소비된다. 이는 결국 사회복지 체계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더 나아가 사회복지의 근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복지 수혜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동정의 대상도, 시혜를 받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국가로부터 정당하게 보장받는 사람들이다. 한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국가는 사회복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여전히 동정과 시혜의 관점으로 복지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복지국가가 아니라 ‘반(反)복지주의 국가’로 머무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사회복지협회(한사협)는 ‘사회복지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사회복지 분야 정치인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사회복지계 전체에 어떤 실질적 의미를 갖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인 몇 명을 배출하는 것으로 정치세력화가 완성될 수는 없다. 사회복지사의 정치세력화는 기존의 정치 구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틀을 넘어 새로운 정책과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노정교섭의 현실화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사회복지사가 보건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하위 집단이 아니라, 독립된 전문직 노동자로서 협상하고 의견을 관철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지금의 상황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사회복지사는 악의 평범성 속에서 명령에 복종한 아이히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더 나은 사회복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종이 아니라 투쟁이 필요하다.
사회복지는 ‘좋은 마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노동’과 ‘정당한 권리’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이제 사회복지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는 구조를 구축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