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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사유 Mar 16. 2024

글 쓰는 나ㄹ

한글을 켜고 흰 바탕을 보면, 막막하다. 무슨 말을 써야 할까? 모르겠다. 아마도, 입금이 안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돈 받으면 기갈나게 잘 쓸 수 있는데. 그런데, 돈을 받는 글을 쓰려면, 일단 많이 써서 읽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만들어 놔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쓰는 일은 다사다난하고 가성비가 떨어진다. 가장 먼저, 무슨 이야기를 쓸지부터가 고민이다. 글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발걸음을 걷는 것처럼, 아무도 모르는 공간을 걸을 뿐이다. 글이라는 세상 속에서 정답이랄 것은 없다. 소재를 잡았으면 다음으로 구상을 한다. 어느 정도 쓸까? 무슨 이야기를 넣고, 무슨 이야기를 뺄까? 이 이야기는 굳이 필요할까? 선택과 집중의 시간을 이어나가다가 일단 손끝으로 자판의 감각을 느낀다.      


다 쓰면, 이제 제목을 정해야 한다. 나는 아무래도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이 이름은 작명소 가서 지어야지. 그리고 한두 시간쯤 지나고 나서 글을 다시 읽어보고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한참을 그러다가 글을 쓰기로 한 시간이 닥쳐오면 그냥 발행한다. 그리고 노트북을 덮는다. 미래의 내가 고치겠지 하며, 잠을 청하거나 다시 독서를 시작한다. 이때 읽는 책은 나에게 후한 점수를 받는다. 소위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랄 것에 시달리다 왔으니, 책의 스토리가 조금 이상할지라도, 맞춤법이 틀렸을지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왜 자꾸 글을 쓰는 걸까? 나는 내가 실패했기 때문에 글을 쓴다. 어디엔가 결점이 있는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 같다. 부자가 성공한 이야기를 글을 쓰는 것보다 부자였던 사람이 한순간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것이다. 대부분 그래서 인생에서 어느 정도 실패한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것 같다.     


부끄러운 나의 실패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그 희열감이 나는 좋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실패담이 많으니까 오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는 한다. 뭐 이를테면,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에게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기가 어려워 바지에 똥을 지린 이야기라던가, 친구와 놀다가 2층에서 떨어졌는데, 낙법에 성공해서 모두에게 박수를 받은 경험이라던가. 흑역사가 많다. 그러니까 내가 오래 살기를 다들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할 때가 많다. 같은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하고는 한다. 오늘도 글을 쓰면서 그랬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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