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회복지가 있을 곳은 길거리이다.

by 안해성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 존엄성과 사회정의의 신념을 바탕으로 개인 · 가족 · 집단 · 조직 · 지역사회 전체 사회와 함께 한다.
나는 언제나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저들의 인권과 권익을 지키며, 사회의 불의와 부정을 거부하고, 개인이익보다 공공이익을 앞세운다.
나는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을 준수함으로써, 도덕성과 책임성을 갖춘 사회복지사로 헌신한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명예를 걸고 이를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이 글은 사회복지사 선서문이다. 앞선 글들에서 사회복지 전문직으로 사회복지사의 책임의식을 어느 정도 비판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복지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아직 시도조차 잘해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일하다가 인권활동가나 여타의 사회운동 단체로 몸을 옮기신 선배사회복지사분들이 있으시겠지만, 그것이 전체 사회복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보지 못한 경우이기도 하다.


사실, 사회복지 노동자가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낯선 일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사회복지학의 정규 교과목에는 사회운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사회운동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행 교육과정은 사회복지에 관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회복지노동자의 역할을 현저히 축소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운동이 정말로 사회복지의 영역이 맞는 것일까? 최근 광장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광장에 선 많은 사람들은 ‘연대’와 ‘투쟁’을 기점으로 다시 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에 우리 사회가 지웠던 많은 소수자들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 연대는 장애인을 향해, 여성을 향해, 노동자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생각해 보자, 이 중 사회복지의 영역이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 헌법이 근로자의 근로 3권을 보장하는 취지는 원칙적으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경제의 기본질서로 채택하면서 노동관계당사자가 상반된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계급적 대립, 적대의 관계로 나아가지 않고 활동과정에서 서로 기능을 나누어 가진 대등한 교섭주체의 관계로 발전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때로는 대립․항쟁하고 때로는 교섭․타협의 조정과정을 거쳐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게 함으로써, 근로자의 이익과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사회복지국가 건설의 과제를 달성하고자 함에 있는 것(...)

헌재 2002 헌 바 12


우리가 사회복지 전문가라면, 당연히 사회복지국가의 달성을 위해 근로 3권을 보장하는 연대를 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제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현장에 계신 사회복지사분들에게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이 부끄럽다. ‘이론과 현장이 생판 다른 분야’라는 평가를 받는 사회복지 현장의 열악함을 차치하더라도 분야 안에서 '사회복지사들끼리 결혼하면 기초생활 수급자를 못 면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돌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열악한 처우는 사회복지사가 그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래서 사회복지사의 소진 문제를 두고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다.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에 대해 한국사회복지사협회나,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이 활발히 압정 개진하고 있지만, 그 근본적인 문제에 좀처럼 다다르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결국, 사회복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어 있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사회복지를 마케팅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혐오정치를 끝장내고, 보편복지로 가는 복지국가의 길 말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내가 태어난 이래로는 가장 높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가 평등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높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사회복지를 잘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연대와 투쟁을 아우를 수 있는 사회복지의 영역을 사회복지운동이라고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keyword
화, 토 연재
이전 04화차별과 혐오를 넘어 복지국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