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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섹권, 차별의 세상에 섹스 외치기

by 안해성

트위터(현 X)에 심심찮게 청소년의 섹스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청소년의 섹스할 권리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솔직히 조금 혼란스럽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미 섹스는 이루어지고 있고 이 섹스를 건강하게(라는 말도 사실 명확한 규명이 없지만) 다루어질 권리를 보장하라는 맥락으로 읽혀야 할 청소년의 섹스할 권리(이하 '청섹권')가 마치 청소년은 책임질 능력이 없으니 섹스를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논리로 흘러가는 것이 다소 차별적이며 혐오적이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631406


한국인 첫 성 경험 시기는 20세에 세 24세 사이가 평균적으로 가장 많지만 이것은 만 나이로 따지기 때문에 상당수는 청소년 시기에 첫 성경험을 가지게 된다. 또한 청소년이다가 성인이 된다고 해서 책임질 능력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별반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맥락에서 청소년의 성관계 문제는 단순히 '발랑 까진 애들의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정당하고 국가적, 범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질 의제일 것이다.


한편 이러한 맥락에서 청소년이나 성범죄 피해와 청섹권을 연결하거나 섹스의 위계구조상 여성에게 훨씬 더 불리한 조건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것은 성립될 수 없다는 논지의 주장들이 나오곤 한다. 이는 '~할 권리', '~하지 않을 권리'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장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 성관계는 이루어지고 있고 법률적으로 이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즉, 이들에게 성관계는 우리 사회가 기초하고 있는 법리주의에 따라 허용된 것이며 이들의 자유권에 따라 보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알맞은 지원을 할 필요가 있으며 알맞은 사회적 안정망을 만들 의무가 있다. 이 맥락에서 성관계 시 여성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불합리한 처사는 청섹권을 외치기 때문이 아닌, 청섹권을 외치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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