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실루엣 Apr 07. 2021

수건 세탁도 만만하지 않다

 처음 혼자 살게 된 건 스무 살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언니가 자취생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익숙하게 내 살림살이를 챙겨 주셨다. 우리 집에는 수건이 유독 많았다. 각종 돌잔치와 외부 행사로부터 받은 수건이 쌓여 있었고 이미 뜯지도 않은 것도 있었다. 엄마는 몇몇 수건을 챙겨 주셨고, 그 후로 수건은 늘 집에서 가져왔다.


 엄마에게 받은 수건은 이미 사용했던 수건인지라 한계가 있었다. 낡고 까슬까슬해져 더는 쓸 수 없게 되었고 새 수건을 구입하기로 했다. 수건의 세계는 내 예상보다 정말 넓었다. 호텔 수건부터 시작해서 30수, 40수. 수건마다 무게도 다 달랐다. 색깔만 정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정해야 할 게 많았다. 그리고 수건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좋은 리뷰를 받은 수건일수록 가격대가 있는 편이었다. 행사에서 수건을 선물을 준다는 건 정말 좋은 것이었다.


 호텔 수건이라 불리는 40수 회색 수건 세트를 구매했다. 수건 하나 샀을 뿐인데 본가의 흔적이 하나둘씩 비워지고 진짜 자취를 하게 된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받았던 수건들은 항상 다른 빨래들과 함께 세탁기에 넣었다. 하지만 새 수건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자취방 첫 구매 수건이니 특별하게 단독세탁을 했다. 세탁기는 표준으로 설정하고 섬유유연제와 세제를 넣으며 우리 집 세탁기로 환영식을 했다. 깨끗한 수건, 향긋한 향기, 물기를 날려주는 햇살. 삼박자가 완벽했지만 그건 얼마 가지 않았다.

세탁한 수건에서는 자꾸만 꿉꿉한 냄새가 났고 반년도 쓰지 않았는데 낡아져 버렸다. 첫 수건인 만큼 나름 신중하게 샀다고 생각했는데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꿉꿉한 냄새가 나는 건 섬유유연제의 양이 부족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듬뿍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그해 겨울, 1년마다 수건을 바꾸는 것은 위생적으로 좋다는 어느 칼럼에 있던 말을 떠올리며 기존 수건을 버리고 새 수건을 장만하기로 했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작년보다 더 신중하게 골랐다. 확실히 작년엔 덜 신중했다. 수건 판매자가 알려주는 공지사항을 1년이 지나서야 봤다. 수건은 단독세탁은 기본이며, 표준세탁이 아닌 울세탁으로 해야 했다. 울세제로 탈수의 세기를 가장 약하게 하여 수건이 상하지 않게 관리해줘야 했던 것이다.


 새로 산 갈색 수건 세트는 늘 울세탁으로 단독세탁해 주었다. 꿉꿉한 냄새는 단 하루도 나지 않았다. 금방 낡아지지도 않았다. 섬세하게 돌보니 좋은 향기를 뿜었다.


 혼자 살기 전까지는 수건을 만만하게 보았다. 값싸고 어떻게 세탁하든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 방을 구성하는 어떤 것이든 만만한 것은 없다. 잘 돌봐야 오랫동안 나와 잘 지낸다. 아침저녁 나의 몸을 안아주는 이 수건들. 가장 약한 탈수로 조심히 또 달래 본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