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잠옷이란 몇 년 동안 마르고 닳도록 입었던 티셔츠와 동네 속옷 가게에서 단돈 5,000원이면 살 수 있는 운동 바지로 위아래 세트를 맞춰주는 것이었다. 잠자는 모습을 누가 보는 것도 아니기에 집에서는 자고로 후줄근한 게 정석이라 생각했다.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도 집에 있는 티셔츠 중 가장 깨끗한 것으로 골라 갔다.
조별 과제에 한참 허덕이던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진짜 ‘잠옷’을 입어보게 되었다. 팀 활동비가 남게 되어 각자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사기로 했는데, 같은 팀이었던 친구가 한 브랜드의 잠옷을 추천해줬다. 어차피 사비도 아니었으니 한 번쯤 구매해볼 만 했다.
잠옷 하나를 입었을 뿐인데 뭔가 기분이 달랐다. 집에서도 날 위해 대접하는 느낌. ‘하루 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잠옷 입고 푹 쉬세요.’라는 멘트가 적힌 숙소에서 보내는 기분이었다. 유튜브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쁜 라이프 스타일에 사는 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또 잠옷을 입으니 낡아서 해진 티셔츠보다 피부에 닿는 촉감이 확실히 좋았다. 숙면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넉넉한 품으로 만들어 편안하기까지 했다. 잠자는 모습을 누가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본다. 후줄근한 옷을 입었을 때는 모든 행동이 느리고 게을렀는데 잠옷을 입고 나니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집 안도 더 예쁘게 가꾸려 노력하게 되었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코로나 19가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재택근무와 자가격리가 일상이 되었다. 바깥에 나가는 외출복보다 잠옷을 더 많이 입게 되니 예전보다 잠옷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잠옷의 종류나 원단을 고르는 선택지가 많아지면서 더 나에게 맞는 잠옷을 찾게 되었다. 아직 티셔츠와 운동 바지 세트를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친구처럼 잠옷을 적극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