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업무량이 안전에 미치는 영향

[2023 안전 책임사회]

by 이건

몇 해 전 생각지도 못했던 75일간의 무급휴가를 받고 어떻게 이 시간들을 채워야 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돈도 벌어야 했고 또 현장 경험도 쌓고 싶은 마음에 집 근처 물류센터에서 일을 해 보기로 했다. 굳이 물류센터를 선택했던 이유는 그 당시 물류센터 화재사고로 무척 시끄러웠던 때라서 실제로 현장은 어떤지 직접 보고 싶은 소방관의 호기심도 한몫했다.


20년 넘게 주한미군에서 소방검열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했던 미국의 현장과는 많이 달랐던 대한민국 일터의 환경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직접 일을 하다 보니 검열할 때 볼 수 없었던 디테일한 위험요인들이 보였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업무량은 안전이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매일 아침 업무 시작 전에 외치는 "안전합시다."라는 구호는 그냥 "안녕하세요."라는 말처럼 의미 없이 주고받는 위험한 습관이 되어 있었다.


무급휴가 기간 동안 운이 좋게도 네 곳의 물류센터와 또 다른 한 곳에서 야간경비로 근무하면서 비로소 책이 아닌 현실에서의 안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문자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날것의 현장을 배우는 일은 아프지만 소방관의 입장에서는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우리가 덕담처럼 주고받는 안전하자는 말의 실체에 대해서도 스스로에게 진지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안전이란 위험한 요소가 제거된 평온한 상태를 말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고도의 압축성장 이면에 감춰진 혹은 방치된 위험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그래서 안전하자라는 말은 여러 위험요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 우리에게만큼은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설픈 희망에 불과하다.


지어진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았던 물류센터.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했던 화재경보시스템의 문제를 많은 사람들은 회피하기에 바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지 높은 분들이 불편해하신다는 이유로 아무나 와서 화재경보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우리의 안전이 아직도 멀었구나 라며 실망하기도 했다.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나라 대한민국은 여전히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앞만 보며 내달리고 있다. 많은 성과를 내는 것도 결국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그 우선순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실적 중심의 욕망은 압도적으로 많은 업무량을 요구하고 그 욕심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병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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