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4.04.23 Tue
어제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굉장히 피곤한 날이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급하게 비타민을 때려 넣어봤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렇게 출근해서 퇴근까지 겨우겨우 버텼다(점심은 잘 챙겨 먹었다).
퇴근 후 수영도 가지 못하고 곧장 집에 와서 잠을 청했다. 월요일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오리발을 착용하고 수영하는 날이어서 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잠을 택했다. 다행히 2시간 동안 잠을 자고 나니 피로가 어느 정도 풀려 일어나서 도시락을 준비했다. 도시락을 싸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 용량이 걱정되었다(도대체 어떤 의식의 흐름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사용 가능한 아이폰 용량이 30GB 정도 남았었는데 만족을 모르는 사람처럼 용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데이터를 삭제하고 저장된 사진을 iCloud로 동기화했다. 동기화할 때 'Finder에 동기화된 사진이 제거됨'이라는 팝업이 떴는데 나는 제거되는 사진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겠지 하고 '사진 제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저장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의 클릭으로 4천 장이 넘는 사진이 삭제되었다. 삭제된 사진들은 내가 20대에 갔던 해외여행 사진들이었다.
왜 사진이 어딘가(특히 Finder)에 저장되어있지 않았냐면, 삭제된 사진들은 이전에 사용하던 아이폰에서 iTunes를 통해 PC로 백업해 놨다가 PC에서 새 아이폰으로 옮겨놨던 것이다(아마도). 즉 (구)아이폰 → PC → (새)아이폰의 과정을 거쳤다. 이 상태에서 (새)아이폰에서 iCloud를 동기화하게 되면 외부에서 가져온 사진은 iCloud로 동기화되지 않고 삭제된다. 보통의 경우에는 PC에 백업된 사진을 옮기면 된다. 하지만 그 PC가 고장 나서 버린 노트북이라면?
혹시 복구 방법이 없을까 나름 열심히 찾아봤다. 덕분에 iCloud 동기화 방식에 대한 지식은 조금 얻을 수 있었지만 복구 방법에 대한 쓸모 있는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삭제된 사진들을 자주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완전히 사라져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기억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더 이상 20대 청춘 때 했던 해외여행들을 추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요즘 클라우드가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데이터를 대신 저장해 준다면 뇌에 저장된 기억과 추억은 사진을 통해 휴대폰이 대신 저장해 주는 것 같다. 휴대폰에서 사진을 삭제하면 뇌에 저장된 기억과 추억도 삭제될까?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이 상용화되기 전에 사람들은 어떻게 추억을 남겼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하는데 저녁때 2시간을 자서 그런지, 사진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좋은 생각이 났다. 고장 나버린 노트북에서는 사진을 찾을 수 없지만 (구)아이폰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다행히 나는 (구)아이폰을 보관하고 있었고, (구)아이폰(아이폰6다)은 연식도 오래되고 액정도 깨지고 성한 곳이 없었지만 충전하니 잘 작동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맥북에 삭제된 사진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좌충우돌 iCloud 동기화의 종착점은 20대 청춘 때 사진들을 보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그 모습을 보니 굉장히 좋아 보였다. 배낭 한 개에 모든 것을 담아 한 달 동안 유럽 여행을 하던 그 열정⋯. 그 열정도 삭제되지 않고 나의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