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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mal B May 23. 2024

무겁게 살지 말자

Date. 05.23 Thu

오늘은 친한 언니가 내 도시락 인스타그램을 보더니 자기도 먹고 싶다며 놀러 온다고 해서 같이 점심⎯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점심 약속을 정한 날부터 도시락을 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시락통에 들어갈 메뉴도 '뭐가 좋을까', '어떤 메뉴가 맛있었지?' 하며 신중하게 고민했다. 일생일대의 점심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나서 먹을 수 있는 점심 한 끼인데 너무 무겁게 생각한 탓일까. 하는 것마다 변변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예쁜 삼각형의 애호박두부전을 만들고 싶었는데⋯, 실패. 남은 두부와 다짐육으로 두부고기김밥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것도 실패. 두 번의 실패 이후 만만한 분홍소시지, 하트맛살전, 유부초밥을 만들고 나니 기진맥진이 되어 나머지는 아침에 하기로 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1구짜리 하이라이트로 이것저것 하느라 머리가 다 아픈 지경이었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심기일전한 상태로 김치볶음밥김밥을 말아 써는데⋯, 오늘따라 김밥 옆구리가 왜 이렇게 잘 터지는지. 도시락에 넣을 수 있는 게 얼마 없었다. 부랴부랴 냉동치킨을 프라이팬으로 튀겼다. 치킨이 튀겨지는 동안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도시락통에 치킨을 담으려고 프라이팬 뚜껑을 여는데⋯, 옷에 기름이 튀었다. 그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당장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 앉아서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옷을 갈아입고 도시락통에 음식을 담고 출근을 했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었다. 갈아입은 옷도 맘에 안 들고 도시락 모양새도 맘에 안 들었다.


24년 05월 23일의 도시락


언젠가 너무 무겁게 사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글을 봤었다. 그때는 막연히 공감하고 말았는데 어제오늘 도시락을 만들면서 정말로 '너무 무겁게 사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잘하고 싶으면 잘하고 싶을수록 오히려 실패하게 되는 아이러니라니. 그리고 나는 고작 점심 도시락 하나에도 내가 만든 도시락을 자랑하고 싶고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인간이었던 것인가⋯. 그러지 말자. 무겁게 살지 말자. 가볍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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