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캐나다에서 다시 시작
이제 캐나다에 도착한 지 3주 정도가 됐다. 나는 차가 없어서 이동에 제약이 많은 편인데 지금 머무는 곳 집주인이 한국인 부부라서 덕을 많이 보고 있다. 같이 장 보러 코스트코, 한인마트, 중국마트 등을 다녀오기도 해서 벌써 여기 있는 마트는 다 섭렵한 것 같다. 나 혼자 여기저기 걸어 다니기도 많이 걸어 다녀서 동네 지리도 좀 익숙해졌다.
도착한 지 1주 만에 캔모어(Canmore)도 갔다 왔다. 내가 있는 곳은 캘거리로, 로키산맥 아래에 있는 캔모어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100km를 넘게 달려 도착한 캔모어는 아름다운 그림 같이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여름에는 더 이쁘다고 해서 벌써 여름이 기대된다. 푸르른 생명력이 넘실대는 여름은 수영을 하기도 좋은 계절이다. 나는 한국에서 취미로 수영을 했었다. 물속은 고요하고, 내 몸의 움직임⎯다리를, 팔을 어떻게 움직여야 물을 더 잘 헤치며 나아갈 수 있을지⎯만 생각할 수 있어서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생각이 많은 나에게 좋은⎯거의 유일한⎯해결책이었다. 그런데 캘거리에서 광활한 평원과 웅장한 로키산맥 풍경을 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여기 와서 생각 과잉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더 찾은 것이다. 대자연에 압도당하기(수영이 더 쉬운 방법이긴 하다).
나는 캘거리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구직 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인터뷰도 몇 번 봤다. 조금 천천히 해도 될 텐데 수입 없이 지출만 있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고 싶은 마음이 나를 닦달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었는데 잘 안 된다. 조급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얼마 전 한 친구가 일자리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나의 일자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나로 충분한데 말이다.
2주 만에 일자리는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는 것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도 한국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돈을 벌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나는 종종 유튜브에서 석가모니 명언 모음집을 들으면서 잠을 청하는데, 거기에 이런 명언이 나온다. "인간이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리고 물건이란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이 혼돈 속에 빠진 이유는 물건들이 사랑을 받고, 사람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도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돈은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발명한 것이지만, 지금은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인생의 목적은 자산 축적이나 노후 준비가 아니라고. 그렇다고 나한테 어떤 인생의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물속에서 헤엄치며 놀듯이 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