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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워홀에서 김장을 하다

34세, 캐나다에서 다시 시작

by normal B

캐나다에 온 지 4주 차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해 본 적 없던 김장을 했다. 지난주, 머물고 있는 집에서 김장을 한다고 분주하길래 나도 손을 보탰다. 재료 준비야 금방 하겠지 하고 선뜻 도와드리겠다고 나섰는데, 김장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초심자의 큰 오산이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재료 준비는 거의 1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집주인 언니, 언니 네 어머니, 나 이렇게 3명이 손을 모았는데도 4시간이나 걸렸다. 마늘 까기, 쪽파 손질, 무 썰기, 배 깎기 등등 준비해야 하는 재료가 뭐 그리 많은지. 덕분에 재료 준비를 하면서 집주인 언니 네 어머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가 결혼한 뒤, 남편이 군대에 있을 때 군부대 앞 조그마한 마을에 살았었는데 마을 근처에 과수원이 있었서 마을 사람들이 종종 다 같이 과수원으로 과일을 따러 갔더란다. 그때당시 어머니는 먼저 나서는 것이 부끄럽고 어려워 조용히 방 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과일 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본인은 "뭐 도와드릴까요?"라는 말 한마디가 참 어려웠는데, 선뜻 김장을 도와주겠다고 한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사실 나도 먼저 나서는 것이 익숙지 않지만 딱히 할 일도 없고 도와드리면 좋을 것 같아 나선 것인데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보다 더 고마운 이야기를 들었다.



때때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 치솟는 물가, 불안한 미래 등으로 인생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타인의 도움과 이해가 필요하지만 얄궂게도 삶이 팍팍하고 버거울 때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은 좁아진다. 그래도 나는 인간은 언제든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대혐오 시대라고 불리는 이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을 행하고 또 변할 수 있는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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