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엔 13월의 태양이 뜬다
어느 누구에게나 새해가 특별한 것처럼, 에티오피아에서도 새해는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다. 동료, 친구들과 함께 축하인사를 건네고 분나를 마셨다. 1월
1일이 아닌 9월, 그것도 중순에 가까운 11일에 맞이하는 새해는 정말 묘했다.
에티오피아는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 나라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유 언어를 사용한다.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다. 그리고 유일하게 고유의 시간과 달력을 쓴다.
덕분에 에티오피아에서 약속을 잡을 때 늘 똑같은 질문을 덧붙이는 습관이 생겼다. 1시에 만나자고 이야기하면 에티오피안 타임? 인터내셔널 타임? 어떤 거야?라고 꼭 다시 묻는다. 당연히 오후 1시인 줄 알고 나갔다가 낭패인 때가 한두 번이 아닌 탓이다.
가게 문을 몇 시에 여냐고 물으면 2시라고 말한다. 아침 8시에 문을 연다는 의미다. 몇 시에 문을 닫아? 하고 물을 때 3시라고 하는 건, 밤 9시에 문을 닫는다는 뜻이다.
달력도 마찬가지다.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율리시스력을 사용하는 나라다. 1~12월까지 30일로 구성되고, 매달 남는 일자를 모아 13월을 만든다. 이렇게 에티오피아는 13월까지 있어, 실제로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달력보다 약 7여 년 정도가 느리다.
고백하자면 나는 다른 시간 체계를 쓰는 것이 불편했다. 친구들과 약속을 정할 때, 가게 오픈 시간을 확인할 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에티오피안 타임인지, 인터내셔널 타임인지 매번 확인해야 했다.
프로젝트 결산 때마다 회계사 분들한테 이러한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 2015년 지출결의서에 2008년 영수증을 붙이셨죠?’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그게 정말인가요?’라는 대답이 늘 되돌아왔다.
하루는 프로젝트 회계 담당자, 피크루에게 투덜거렸다.
“어떤 영수증은 2015년, 다른 영수증은 2008년, 구분하는 거 너무 어려워. 왜 이렇게 느린 시간 기준을 쓰는 거야?”
“그래? 우린 그냥 다른 기준을 쓰는 것뿐인걸.”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과연 그들의 기준을 느리다, 빠르다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물론 지금껏 내가 경험해온 세계의 기준으로 에티오피안 타임은 느리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인들에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느리다, 빠르다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에티오피아에선 모두가 스스로의 속도로 걷고, 그 걸음에 자부심을 갖는다.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선택에는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그들에게 감히 느리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세계가 말하는 기준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곳에 나 또한 속해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건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왁자지껄한 12월의 연말 분위기가 에티오피아에선 9월에 한창이었다. 그 분위기에 취해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해피 뉴 이어’ 인사를 건넸다. 9월 11일, 카톡방에 남겨진 해피 뉴 이어 인사는 내가 봐도 낯설었다. 새해라는 단어가 주는 희망과 설렘을 한국에도 한 조각 나누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