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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r 16. 2019

이곳, 아프리카에서 살면 참 좋겠다

누구나 한 번쯤 여행에서 마주치는 순간들

처음 아프리카를 마음먹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있다.

왜 하필 아프리카야?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아, 여기서 살면 참 좋겠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는 한 노천카페에서 고소한 커피를 마시는 순간일 수 있고, 화려한 야경 속에서 쇼핑을 하고 밤을 보내는 순간일 수도 있을 것이며, 길 위에서 먼저 다가와 한 마디 건네는 현지인을 마주쳤던 순간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 순간이 도피성으로 떠난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나를 붙잡지 말아 주세요.

2014년 여름. 휴학을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몹시 지친 상태였다. 이제 곧 졸업반에 학교에서 비켜주어야 하는 나이인데, 갈 곳을 완전히 잃은 기분이었다. 만나던 남자 친구는 헤어졌다. 학과 공부엔 흥미를 잃었다. 취업시장은 역대 최고 실업률을 갱신했다. 절박한 사람도 떨어지는 판국에 절박하지도, 절박할 이유도 찾지 못한 내게 취업시장이 친절할 리 만무했다. 그래서 반쯤은 충동적으로 끊은 비행기표였다.


누가 그랬나. ‘언젠간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지금의 나에겐 그 ‘언젠가’가 간절한 순간이었다. 비행기표를 끊고 잠비아로 떠났다. 한국에서의 짐스러움을 훌훌 털어 버리듯이. 2주 간의 짧지만 긴 방황인 셈이었다.



아프리카, 잠비아

Singing In The ‘VICTORIA FALLS’

잠비아는 생각보다 안전했다. 워크캠프에서 만난 잠비아 친구들과 매일같이 놀러 다녔다. 다 같이 어울려 밤엔 클럽도 가고, 빅토리아 폭포에서 이끼를 닦다가도 마대자루를 마이크 삼아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쏟아지는 폭포수를 맞으며 미친 듯이 춤을 추기도 했다. 내 안에 동면하던 끼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주말엔 친구의 친구 차를 빌려  야매 사파리 투어를 했다. 잠비아 친구, 제레미의 본업은 사파리 관리였다.


“위험한 거 아냐? 갑자기 들이받으면 어떡해?”

“괜찮아. 지금 근무하는 내 친구가 따라와 줄 거야.”

“코뿔소가 또 엄청 빠르다던데.”

“아직 내가 일하면서 죽은 사람은 못 봤어. 처음은 언제나 길이 남는 법이지 하하”

“제발 내게 꿈과 희망을 줘, 제레미...”


야매 사파리 투어를 함께 한 제레미와 친구들


그러다 해가 질 무렵엔 바오밥나무에 올라 조용히, 2시간이 넘도록 천천히 해가 저물어 가는 걸 지켜보았다. 노래 부르고 춤추던 폭포는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웅장한 폭포수와 선명하게 빛나는 무지개를 선사해 주었다.




달 무지개는 기적이었다. 미미한 달빛에도 선명한 일곱 가지 색을 밤하늘에 흩뿌리는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연이 건네주는 경이로움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유나, 넌 운이 정말 좋아. 아무나 볼 수 있는 거 아니거든.”

“내가?”

“전 세계에서 이걸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빅토리아 폭포뿐일 거야. 그것도 오직 보름달이 뜨는 날 중에서도 아주 운이 좋을 때만이지.”

“그래?”

“응. 넌 그 대단한 걸 며칠 만에 봤으니, 한국에서도 다 잘 풀릴 거야."


사실이든 아니든, 제레미의 다 잘 될 거란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다시 달 무지개를 보았다. 저렇게 희미한 달빛에도 힘껏 제 한 몸 부서지며 빛내는 달 무지개가 삼삼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너도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달 무지개가 사그라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응어리가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방울, 윤정아 졸업해야지. 두 방울, 얼른 취업해야지. 세 방울, 너도 나이가 몇인데. 왜 나는 그 무수한 말들에 단 한 번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말하지 못했던 걸까.




아프리카는 위로다.

다음 날,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죽기보다 돌아오기 싫을 것 같았는데,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 땅을 금방 다시 밟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프리카는 위로의 땅이다. 불안과 위안의 대륙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아프리카에서 조금 더 오래, 지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 여기서 살면 참 좋겠다.’


정확히 6개월 뒤, 나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행 비행기에 다시 올랐다. 제레미는 알까. 자신의 한 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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