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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Jun 18. 2019

부모님과의 첫 자유여행을 아프리카로 시작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딸내미가 사는 곳에나 한 번 가볼까?”

에티오피아에 온 지 어언 6개월이 되었다. 8월이었다. 부모님이 여름휴가로 한 번 딸내미가 사는 곳으로 가볼까? 하고 운을 띄우셨다. 아프리카에서 홀로 적적하게 살던 딸내미는 당연히 콜이었다.


일사천리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일정에 맞추어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여행지를 엄선했다. 수많은 곳이 후보지로 올랐다. 랄리벨라, 곤다르, 다나킬. 그러나 이 모든 여행지들은 엄마의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비행기를 타고 싶진 않다.’라는 한마디로 물거품이 되었다.


대신 일주일 간 프라이빗 택시와 그 차주 ‘사미’를 기사로 고용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길거리에 서서 치열하게 네고를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세팅하고 나니 그제야 실감 났다.


‘아, 아프리카에 엄마 아빠가 오시는구나!’


우리 부모님께서는 해외는커녕 평생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으신 분들이시다. 그런 부모님이 아프리카행을 결심한 건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렇게 여행은 시작됐다

8월 16일. 엄마 아빠가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에서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며 근심하시던 부모님은 무사히 입국장에 들어섰다.


“엄마! 아빠! 여기, 여기!”

“아이고 우리 딸, 잘 지냈어? 얼굴이 왜 이렇게 보름달이 됐어?”


엄마가 (5킬로가 찐) 나를 단박에 알아보셨다. 6개월 간 밀린 수다를 떨며 집으로 갔다. 내가 사는 집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두 눈으로 보시더니 그제야 맘이 놓이셨나 보다. 짐을 풀고 1층 카페에 가서 현지식 분나를 한 잔 마셨다.


부모님과 함께 한 첫 분나

“쌀람! 여기 우리 부모님이랑 남동생이야. 엄마, 여기가 내가 맨날 저녁 먹는다고 했던 곳. “

“오, 어머니시라고? 시스터인 줄 알았어! 에티오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윤정아, 이 친구가 뭐라는 거니?”

“에티오피아에 와서 정말 환영한대. 그리고 엄마 완전 슈퍼 핵 동안이래. 내 언니인 줄 알았대.”

“어머머, 대박. 언니는 무슨.”


손사래 치던 엄마는 일주일 내내 가는 곳마다 내 시스터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더니, 마지막 날에는 시스터 단어만 나와도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의미심장하게 웃으셨다.


분나를 마신 부모님은 마치 내가 처음 분나를 마셨을 때처럼 컬처 소크에 빠지셨다. 너무 맛있어서.

내가 쿨쿨 자고 있던 이른 아침에도 아빠랑 엄마는 1층에서 몰래 모닝 분나를 하고 오셨다고 하니, 나름 분나 영업이 성공한 셈이다.




딸내미 투어,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일주일 일정에 또다시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으시다는 부모님을 위해 아디스아바바 근교 여행지를 선정했다.

에티오피아의 그랜드 캐넌이라는 데브라 리바노스.

아디스 아바바에서 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아디스 아바바를 조금만 벗어나도 푸른 초원과 들판, 낮게 들어앉은 전통 가옥들. 부모님은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전통 집들과 아슬아슬하게 지어진 현지 슈퍼, 길을 돌아다니는 양과 소, 말을 보며 신기해하시기도, 감회에 젖기도 하셨다.


“아직도 이렇게 생긴 슈퍼들이 있네. 딱 아빠 어렸을 적 같다. 도로도, 간판도 그렇고.”

“아 진짜? 아빠 어렸을 땐 이런 가게들이 있었어?”

“응 많았지. 여긴 한국 70년대 같아.”


데브라 리바노스에 도착해서 쏟아지는 폭포수와 협곡을 보았다. 나름 에티오피아의 그랜드 캐넌이라는데, 관리되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에티오피아의 관광지는 대체로 친절하지 않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지 않도록 울타리가 둘러져 있거나, 협곡의 유래 등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거나, 입장료를 받는 안내 데스크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자연이 보여주는 그 모습 그대로,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거친 날 것 그대로의 멋이 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사진을 찍고, 벤치에 앉아 늘어져 있는 소소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엄마 아빠와의 에티오피아 여행은 전혀 거창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1층 카페에서 분나 한 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을 걷다 보면 현지인 가족들이 말을 걸 때가 많았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이름을 묻고, 서로의 가정에 행운이 깃들길 빌어주곤 했다.


길거리에 다니는 택시들만 보아도 아빠는 ‘저 차는 기종이 무엇이고, 아빠 어릴 땐 자주 봤었는데 아직도 끌고 다니는 게 놀랍다.’는 등 어릴 적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주셨다.


엄마는 망고가 참 싸다며 집에 들어올 때마다 과일가게에서 애플망고를 1kg씩 꼭 사셨다. 자기 전에 야식으로 엄마가 까주는 과일을 먹으며 사진을 고르고 얘기를 나눴다.


어른이 된 이후로 엄마 아빠와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한 적이 처음이라고 느껴질 만큼 밥을 먹으면서도, 카페에 가서도, 택시 안에서도, 자기 전에도,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게 그냥, 참 좋았다.



부모님과 여행해보신 적 있으세요?

마지막 날, 나는 결국 몸살이 났다. 아프리카에서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셔야 한다는 압박감과 통역사, 가이드를 한꺼번에 하려다 그런 건지, 부모님이 떠나는 게 싫어서 떼를 쓰는 건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앓는 소리를 내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두 분이서 씩씩하게 1층 카페에서 분나를 마시고 오셨다. 분나의 맛은 한국에 가서도 계속 생각날 것 같다고 하셨다.  


부모님을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출국장으로 사라져 점이 되실 때까지 유리문 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고작 일주일이었는데, 모셔다 드리고 돌아온 집이 너무 크고 휑해서 눈물이 났다.


밤마다 엄마 아빠랑 과일 까먹으며 이불에 드러누워 수다 떤 건 고작 6개월 중에 일주일 뿐이었는데. 나도 부모님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한국으로 당장 가고 싶었다. 펑펑 소리 내어 울고도 모자라 일주일 내내 퇴근하고 집에 올 때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왔다.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우리 딸, 씩씩하게 살고 있는 거 보니 엄마가 다 기특하더라. 남은 시간도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다 올 거라 믿어. 잘 먹고 사는지 걱정했는데, 그래도 엄마 아빠 가서 밥 한 끼 차려주고 오니 맘이 좀 놓이네. 얼른 한국에서 보자, 우리 딸. 그나저나 거기 커피 맛있더라. 한국 와서도 자꾸 생각나네.”

“한국 갈 때 커피 왕창 사갈게요! 나 한국 가면 우리 또 여행 가자.”

“너 또 앓아누우려고?”

“난 이제 그런 초보가 아니야. 이번이 처음이었잖아. 다음번엔 더 좋은 데 가자.”



나는 그 뒤로 매년 적어도 한 번은 엄마 아빠랑 여행을 떠난다.


에티오피아, 일본, 한국, 올해는 유럽


4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 아빠는 그때 마신 분나를 기억하시고, 테이크 아웃해 온 피자가게도 곧잘 외우신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으뽀이 피자를 꼭 드셔 보길!)


거창하진 않지만 부모님과 함께 소소하게 쌓아가는 여행과 추억들이 좋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께 더 많은 일상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올해도 또, 함께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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