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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y 07. 2019

아프리카에서 취미는 사치일까?

금사빠의 취미 발굴기

아프리카는 심심하다.

와이파이는 있으나 느리다. 회사 와이파이로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는데 딱 4일이 걸렸다. 놀랍게도 핸드폰 데이터는 3G가 된다. 다만 요금이 매우 비싸고 자주 끊긴다. 덮어놓고 쓰다 보면 한국에서 7,8만 원씩 내던 통신비와 비슷해진다.


에티오피아에 오니 ‘취미 빈곤자’였다. 핸드폰과 노트북, 인터넷을 빼니 할 수 있는 취미가 없었다. 그 사실이 충격이었다.


카톡과 전화를 실시간으로 할 수 없으니 불안했다. 내가 못 본 사이에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 어쩌지? 인터넷을 못 하는 사이에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오면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굴려봤자 인터넷이 아예 안 되니 방법이 없었다.



아디스아바바의 멀티플렉스 @ednamall homepage

그렇게 취미 탐방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는 대체로 한계가 있다.

독서, 홈트레이닝, 미드 감상.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동양인 여자 혼자 다니지 않는 것이 권장되었다. 밤에 다닐 수 없는 건 생각보다 큰 제약조건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말엔 아침 일찍부터 나갔다. 주로 집 근처에 있는 ednamall 영화관에 갔다. 최신 영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팝콘과 영화까지 4천 원이면 끝낼 수 있었다.


매주 혼영을 했다. 스파이, 미션 임파서블, 더 헌트… 온갖 최신 영화를 한국보다 더 빨리 섭렵했다. 미션 임파서블이 한국보다 먼저 개봉해서 두 번이나 보고 한동안 열심히 스포 하고 다녔다.




‘혼영’하는 외국인 처음 보니?

에티오피아는 ‘혼영’이 드물다. 영화관에 홀로 입장하는 건 거진 나 하나뿐이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에티오피아의 영화관은 우리나라 영화관처럼 소리 죽여 한 두 마디 겨우 꺼내는 고요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한창 상영 중에도 왁자지껄 이야기를 하고, 여기저기서 핸드폰 불빛이 터져 나오곤 했다. 게 중에는 분명 스포가 있었겠지만 나는 다행히 그 스포를 전부 이해할 만큼 암하라어를 잘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고 같은 멀티플렉스 안에 있는 카페에서 분나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저녁엔 친구들과 밥을 먹고 오락실에 갔다.


이게 내 주요 주말 루틴이었다.

 

ednamall에 있는 오락실. 실컷 놀았다 @pinterest


어느 금사빠가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법

한국에 있을 때 사실 나는 ‘금사빠’였다. 사람이든, 취미든 금방 꽂힌다. 그리고 그만큼 빨리 질린다.


‘금사빠’ 유통기한은 3개월을 넘겨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취미가 시작은 창대하나 졸렬하게 막을 내렸다.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봤지만 이렇다 내세울만한 소득은 없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정반대였다. 에티오피아에 있으니 적은 가짓수의 취미를 깊게 파고들었다. 독서, 홈트레이닝, 영어공부, 미드 감상 외에는 할 수 있는 취미가 거의 없었다.


하나의 취미를 반복해서 1년 가까이 유지한 게 생애 처음이었다. 낯설었다.



한국에 귀국할 때쯤, 영어는 목표하던 OPIC AL을 취득했다. 홈트레이닝으로 희미하지만 11자 복근을 만들었고, 한 달에 한 권도 안 읽던 내가 30권 이상을 읽고 감상문까지 남겼다. 짬짬이 써둔 조각 글과 일기들을 모아보니 공책 한 권이 빼곡하게 나왔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는 건 참 뿌듯한 일이었다.


한국에 온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금사빠다. 하지만 적어도 늘 꾸준히 하는 취미는 생겼다. 이건 아마 에티오피아에서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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