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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Sep 29. 2019

나는 그냥 한국에 가고 싶다

향수병, 나는 예외일 거라 생각했어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물을 틀었는데 샤워기가 고요했다. 단수였다. 하루에 서너 번은 찾아오는 단수라 색다를 것도 없었다. 한숨을 푹 쉬고 바닥에 놓아둔 생수 뚜껑을 뜯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여기에서 이깟 생수병으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생수병을 끌어안고 쭈그려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한국이 절실했다.


 



나는 예외일 거라 생각했어

나는 에티오피아에 오기 전에도 여행을 꽤 자주 다녔다. 한 달 동안 캐리어 하나를 들고 유럽을 일주한 적도, 잠비아에서 현지 친구들과 함께 동거 동락하며 봉사활동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에서 ‘한국에 가고 싶다’고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항상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더 머무르고 싶다는 아쉬움뿐이었다.




스페인 여행에서는 2주 차쯤 되었을 때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버린 적도 있다. 그리고 발 닿는 대로 포르투갈, 모로코, 영국, 체코 등을 한 달 넘게 떠돌았다.


자기 전에 누워서 다음날 어디로 갈지 고민하며 내일 탈 비행기표를 끊었다. 사하라 사막에서는 일주일 넘게 머무르며 느지막이 일어나 책을 읽고, 햇빛을 쐬다 석양을 보고 잠드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온전히 나만의 선택으로 채워 나갔다. ‘한국에서의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덕분에, 나는 좀 더 많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 


내 모험은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됐다. 통장이 텅 빌 때까지.



일주일이 넘도록 머무른 사하라 사막


주변에서는 내게 역마살이 낀 게 분명하다고 했다. 해외에서 혼자 살아도 참 잘 살 것 같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나도 나 스스로가 그렇다고 확신했다.


나는 한국보다 해외가 더 잘 맞는 사람이다, 해외취업을 하겠다고 늘 이야기하고 다녔다. 또래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 1년 살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왔기에, 향수병이 왔을 때 무너지는 것도 빨랐다.





향수병이 무서운 이유

한 번 한국 생각이 나니 걷잡을 수 없었다. 출근해서 일을 하다 정전이 되어 노트북 배터리가 간당할 때, ‘아, 한국에서는 정전 따윈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노트북 배터리가 모자라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은 한국에선 평생 쓸 일이 없을 거야.’


퇴근하고 집에서 촛불을 켜고 미리 다운로드하여온 영화를 아껴 볼 때도, ‘한국에서는 욕조에 누워서도 실시간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일을 하다 멍 때리는 시간이 늘었다. 퇴근하고 저녁도 거르고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잠으로 저녁을 채웠다. 자존심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부모님한테는 말도 못 꺼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왔는데, 귀국할까라는 말은 죽어도 안 나왔다.


2주가 넘도록 속으로 혼자 끙끙 앓았다.



정전이 된 고요한 사무실


“유나, 한국은 이제 곧 추석이라며?”


추석 즈음, 요하니스가 물었다. 추석 안부인사가 쌓여가면서 내 향수병도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응 맞아. 한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야.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래.”

“그래? 그럼 유나 네 가족들도 다 모였겠다. 한국 가고 싶진 않아?”

“가고 싶지. 부모님이 해주는 집밥도 먹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고, 한국 생각도 엄청나고.”

“그래도 여기 있기로 결심한 거잖아, 대단해.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실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요하니스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그래도 여기 있기로 결심한 거라는 말,


지난 몇 주가 넘도록 향수병에 끙끙 앓으면서도 귀국 티켓을 끊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실감 났다.

아직 내가 있을 곳은 여기, 에티오피아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일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도 내 향수병은 얼마간 더 지속됐다. 그러다 무기력증을 시작으로 한국, 에티오피아를 비교하는 습관도 차츰 사라졌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져 갔다. 지나고 나니 한국이 에티오피아보다 나은 이유를 수십, 수백 가지를 찾았어도 귀국행 티켓은 끝끝내 클릭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스페인 여행에서도 귀국 티켓을 버리면 곤란해지는 이유를 수십 가지는 세었던 나였다.


한국에 가서 쓸 생활비가 없어, 내가 정말 한국에 가고 싶을 때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거나 없을 수 있어, 여자 혼자 다니다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옷과 세면도구도 일주일 치밖에 없는데 남은 일정은 어떻게 다녀야 되지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국 티켓은 버렸다.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수십 가지나 찾았는데도 하고 싶다는 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다.

그 후 물론 예상했던 대로 고생했지만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선택도 그런 시간이 되기를,

한국이 그리워 몸서리치던 시간들이 단단하게 내 안에 자리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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