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둥둥 Mar 20. 2025

나는 알고 받아들인다 -양귀자, <모순>

괴도 박둥둥의 월급루팡 도서리뷰


차트 역주행으로 유명한 양귀자의 <모순>을 읽었다.

왜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까지 갔는지 이해가 되었다.

흔히 베스트셀러 소설이 되는 중요한 조건으로 쉬운 구조를 꼽는다. 악역은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악역이고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악과 대립한다. (당연히 중간에 갈등은 한다) 물론 그거만으론 부족하다. 그 흔한 이야기 속에서 눈에 띄려면 특징이라 할 매력은 있어야 하기에. <모순>은 이런 매력이 차고 넘치는 좋은 베스트셀러의 정석이다.


<모순>의 세계는 단순하다.

엄마와 이모, 아버지와 이모부, 나영석과 김진우 등으로 소설의 세계는 마치 양면 색종이처럼 딱 잘라져 대립한다. (실제 세계가 이처럼 딱 잘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독자가 이해하긴 편하지만 자칫 지루해하기도 쉬운 이 구조를 흔드는 건 주인공 안진진이다. 일 아드미라리, 즉 삶에서 어떤 놀라움도 없는 상태를 일컫는 이 말은 젊은 안진진을 대표하는 말이다.


안진진은 고양이 같다.

불과 25세의 나이로 인생의 이치를 깨달아버린 그녀의 고백이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는 천박한 넋두리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녀가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맑은 눈을 가진 고양이처럼 그녀는 모두 비난하는 아버지의 진심을 말끄러미 들여다보고, 모두 행복하다 믿어 의심치 않는 이모의 고독을 안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능숙하게 세상과 인생의 대립되는 두 가치들 사이를 사뿐사뿐 걷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위험해 보이는 절벽에서 가볍게 뛰어내리기도 한다. <모순>은 이런 안진진의 유연함으로 인해 입체감을 얻는다. 이 캐릭터와 그녀의 고백이 그토록 생생하지 못했더라면 이 작품은 크레파스로 그린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작품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작품의 결말을 보면 성장이라는 말보다는 성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안진진은 이미 처음부터 부족함 없는 안진진이었으므로.

첫 장면에서 인생에 충실하기를 다짐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녀는 그 충실함의 실천으로 스스로 모순된 선택을 한다. 보통의 성장소설에서 체념하며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그녀는 처음부터 모순적인 이 세계를 이해하고 있었고 생각 끝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모순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로 마음먹는다.


따라서 이 결말을 단순히 이상과 현실 중 현실을 택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녀는 이모의 생의 결말을 보았고 충분히 생각한 끝에 훨씬 더 어려운 길로, 더 적극적인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이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