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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Mar 06. 2023

맛에도 운명이 있다

청양고추를 찾는 이유

충남 청양에 다녀왔다. 청양군 가로등은 모두 고추 모형으로 되어 있다. 꼭대기에 고추 모형이 얹혀져 있어 고추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매운 고추로 유명한 청양고추를 상징하는 것이다. 


청양고추가 매운 고추의 대명사가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곰곰 헤아려보니 수십 년이랄 정도는 아니었다. 식당에서 “매운 고추 주세요” 하고 말하던 것이 “청양고추 주세요”로 바꿔 말해도 누구나 매운 고추로 알아듣게 된 시기를 꼽자면 넉넉히 잡아도 20년, 한참을 양보해도 30년 안팎이다.


청양의 고추 농가들은 모두 ‘청양고추’를 재배할까.이런 퀴즈를 낼 때 정답을 맞추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청양고추’는 ‘청양(산) 고추’와 다르기 때문이다. 청양고추는 매운맛으로 유명한 고추 품종이고 청양 고추는 청양에서 생산한 고추를 말한다. 청양의 고추 농가는 약 5000호에 달하고 이 중에서 청양고추, 즉 매운 고추 품종을 재배하는 농가는 10%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청양에서는 청양이 고추의 대표 산지가 된 데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끼지만 ‘청양고추’로만 알려지는 데 대해서는 썩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간단히 말해 ‘청양의 고추가 다 매운 맛은 아니’라는 항변도 있는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매운맛의 청양고추가 청양군의 상징인 것은 분명하다. 청양의 또 다른 대표 농산물인 구기자보다 전국적 인지도가 훨씬 높다. ‘청양 고추’도, ‘청양고추’도 시장에서 타지 고추보다 높은 값을 받는다.


청양고추의 유래는 청양이 아니라 경북 청송과 영양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을 합쳐 만든 토종 품종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충남 청양이 원조인 것처럼 변했다는 것이다. 이 매운 맛 고추 품종을 개발한 곳은 중앙종묘라는 종자회사였다. 식품기업 오뚜기와 협력해 1983년 개발한 품종인데 발주처는 일본의 카레 회사였다. 매운맛 카레의 소스 원재료용으로 의뢰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매운) 맛이 나오지 않아 (할수없이) 국내 농가에 보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청송과 영양보다 충남 청양에서 재배가 활발해지고 시장 수요가 급증하면서 청양고추의 원조는 청양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청양고추의 인기가 높아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원조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대중적 인식은 이미 충남 청양으로 굳어져 버렸다. 강한 자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임을 확인시킨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청양고추는 과연 매운 맛 때문에 인기일까. 청양(산) 고추는 맵지 않을까. 

이 원초적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애매하다. 간혹 요리 전문가들은 청양고추를 선호하는 이유를 “매운 맛 때문이 아니라 음식의 느끼함을 없애주고 깔끔한 맛을 내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한다. 일반 고추 품종을 청양에서 재배하면 다른 지역에서 재배한 것보다 더 매운 맛이 난다고도 한다. 지역의 토질과 기후의 영향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청양고추와 청양 고추를 보면 맛에도 운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추의 씨앗도 누구를 만나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이다. 하물며 인생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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