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는 무슨
초보 여행자는 돈 내고 입장하는 곳을 주로 가고, 중급 여행자는 돈 안내고 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고수는 주로 터(址)를 찾아다닌다고, 여행의 고수가 알려 줬다. 뒷말이 딱히 없었기에 추측하기로, ‘터’만 남은 곳에는 상상이 무한하다는 말이려니 싶었다. 시간, 역사, 여운의 줄임말이 터인가 보다.
초보 여행자는 단체로 다니길 좋아하고, 중급 여행자는 마음이 맞는 동반자와 함께 다니며 여행의 고수는 홀로 다닌다. 고수가 아니라도 이쯤은 넘겨짚을 수 있으니, 어디로든 혼자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고수라 자부해도 된다.
여행의 고수이자 요리의 고수이기도 한 셰프의 책에서 ‘이모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봤다. 착잡한 마음으로 옮긴다.
서울에만 식당이 12만 개다. 한 집 건너 하나는 이모가 일한다. 그들도 이제 늙고, 젊은 이모는 이런 노동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쌔빠지고 영세한 이런 시장에, 이모가 사라지는 날이 미구(未久)다. 빤히 보인다. 밥집의 운명이다.
-박찬일 셰프의 <밥 먹다가, 울컥> 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겪을 만한 일이지만 밥 먹다가 울컥한 경험을 못해본 이들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밥 먹다가 울컥한 경험도 없이 인생을 논하다가 뺨따귀 맞을까 염려되어 미리 언질을 준다. 물론 뭐, 인생이 무엇인지 테스 형도 모를 일이니 논하든 따귀를 맞든 알아서 할 일이다.
여행의 고수이자 맛의 고수가 우리나라 최고의 해장국집으로 꼽은 전주 ‘왱이집’에 이런 시구가 붙어 있다. 제목은 ‘콩나물’이다.
어깨 한번 못 펴도
잘만 크더라
아등바등 살아도
잘만 자라더라
물만 먹어도
잘만 영글더라
사는 것 별 것 없더라
콩나물은 결코 고수라 할 수 없지만 테스형보다 쉽게 (별 것 없다는) 인생을 알려준다. 왜 ‘왱’이냐고 언젠가 왱이집에서 물었는데 답변이 영 시답잖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질문이 허접했다. 왜는 무슨, 그냥 왱이 되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