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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있는 사람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다

by 포포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가끔 생각난다. 미인이어서도 아니고 열정적이어서도 아니다. 아, 하는 깨우침 같은 걸 준 선생님은 색깔이 강한 분이었다. 색깔 있는 선생님의 말씀이 종종 기억난다.


“파랑도 파랗다, 초록도 파랗다, 연두색도 파랗다, 진청색도 파랗다, 뭐가 다 파란색이냐. 서양에서는 파란색 블루를 수십 가지로 구분해. 코발트불루, 마린블루, 베이비불루, 네이비블루…”

선생님이 당부하기를 “제발 초록색 신호등을 파란색이라 말하지 말라”였다.

그날 이후 신호등을 볼 때마다 미술선생님이 떠올랐다.


온 세상이 K시리즈로 도배되는 듯한 시대. 10월에 한글날이 있어서인가, 한 유튜브 채널에서 ‘파랗다는 말’의 해석을 보게 됐다. 옥스퍼드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다는 학생의 영상이다. 푸르고 파랗고 시퍼렇고 새파랗고 짙푸르고 푸르스름하고 푸르딩딩하고… 한국어의 파란색은 종류가 어마무시하며 그 말마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는 얘기였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증가하면서 이런 식의 분석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어의 표현이 무궁한 것은 둘째치고 조금씩 다른 단어들 하나하나에 제각각의 감정과 감각들이 깃들어 있다는 영상의 조회수도 엄청났다.


한글의 모양에 대한 견해도 비슷했다. 세계의 많은 곳들에서 한글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활자’로 꼽힌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은 한글을 촌스러운 활자로 여기며 영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그런 디자이너들을 정말 많이 봤다). 남의 떡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일까, 역사적 DNA가 만든 사대 근성일까.


호기심 많은 미국인이 ‘한글이 아름다운 이유(혹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를 분석한 글을 올렸고,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나는 그것을 클릭했다. 요지는 이렇다.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끼는 도형들은 기하학적 ․(점) -(선) □△○(면)들이고, 그것들을 다 갖고 있는 글자가 한글이다. 꽃이란 글자를 보면 꽃처럼 생겼고, 산이란 글자를 보면 산처럼 생겼고, 엄마란 글자를 보면 모양 자체로 엄마 같지 않은가. 상형문자가 아닌 소리글자에서 이런 일체감이 느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외국인들이 발견한 한글의 특징이다. 과학적 창조 문자라는 전문적 소개와 딴판이고, 국어학계에서도 못 들어본 분석이다. 그러고 보니 밥은 밥처럼 생겼고, 똥은 똥처럼 생겼고, 물은 물처럼 흐르는 것 같다. 넷플릭스 시청율 1위인 <오징어게임>의 제목글자도 어쩐지 오징어스럽다. 디자인이 재미있고 하기에 따라 응용범위가 한없이 넓은 문자가 한글이라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 가는 요즘.


파랑뿐만 아니라 빨강, 노랑, 하양, 검정에도 별의별 색깔들이 베리에이션하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러니 초록도 파랗고, 청록도 파랗다 말하는 것을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식은 반찬이 많아 비효율적이고, 밥과 반찬과 국물과 별별 음식들의 가짓수가 많아 세계화가 불가능하다고 믿었었다. K-푸드는 K팝의 덕을 받아 잠시 빛을 발하는 언저리 용어로 불리기도 했다. 비과학적인 ‘손맛’에 의존한다고 자책하던 게 엊그제인데 모든 걸 까맣게 잊은 형국이다. 과거의 그 모든 단점들이 지금은 특별한 강점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갖고 이토록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감이 생겨서일까, 지식이 넓어져서일까, BTS의 도움 때문일까, 케데헌의 여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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