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하는 창작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을 읽고.

by 토미융합소

창작자란 무엇일까요? 창작자를 네이버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새로운 것이나 예술 작품 따위를 창작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저는 '새로운 것'이나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고유한 생각과 가치관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창작자를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매체를 통해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제 생각 때문일까요? 저는 그동안 창작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독창적인 창작자의 생각과 그것의 효과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영화의 대표적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을 읽고 나니 이런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고레에다 감독이 그동안 자신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했던 것들과 경험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기록돼 있었습니다. 책은 정보전달을 위한 설명문보다는 그의 일상을 적은 에세이에 가까웠죠.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실제 정보나 사실보다는 그가 창작 활동에 임하는 태도와 개인적인 생각들이 더욱 많이 녹아 있었습니다.


그는 작품을 임하는 데 있어서 항상 겸손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메시지나 하고자 하는 말을 정하긴 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 전체를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구성 곳곳에 여백을 두고 그곳을 주변 스태프, 배우, 환경 등과 함께 채워나갔습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를 만들 때 그가 취했던 방식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전체적인 스토리 구상을 위해 각본은 짰지만 어린 배우들에게는 각본 대신 상황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감독이 짜준 대본이 아니라, 그 상황이라면 자신들이 했을 법한 행동을 하면서 작품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습니다. 그가 '대사를 말로 가르치기'라고 부른 이러한 기법은 작품에 유연함과 자유로움을 선사했습니다. 배우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 속에 녹아들어 작품을 그려나가는 진정한 작품 속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작업방식은 아마 그의 다큐멘터리 작업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는 다큐멘터리에는 '재즈적 요소(악보가 있는 게 아니라 그 자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목적은 어떠한 사실의 '재현'이 아닌, 새로운 가치의 '생성'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다큐멘터리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해가 그를 '자신의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고'에서 '주변 요소 간의 호흡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사고'로 이끌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작품은 '창작자의 생각의 표현'으로만 생각했던 저에게 있어서 이런 류의 작업방식은 매우 새로웠습니다. 작품을 창작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은 기분이었죠. 사실 저는 그동안 창작자를 외로운 직업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가 모든 걸 커버해야 하고, 혼자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레에다 감독의 이러한 작업 방식을 접하고 나니, 창작자가 더 이상 외로운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작자도 주변과 소통하고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직업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창작자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작업방식, 창작자와 주변 요소들이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업방식 중 어떤 것이 더 뛰어나고 어떤 것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창작자가 더 이상 혼자서 모든 것을 커버하는 직업이 아니란 것은 저에게 매우 기쁜 소식입니다.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은 이처럼 생기 넘치고 개방적인 창작자가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 나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저처럼 이전까지 창작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셨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들 책 표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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