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소화불량을 겪는 우리. 배운 것을 소화하는 시간
‘너 요즘 뭐하고 지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인사치레지만 백수인 저로서는 난감하기 그지없습니다.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해오던 친구가 갑자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면 분명 정 많은 제 친구는 근심 어린 표정과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를 걱정해주는 친구의 마음은 고맙긴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괜스레 내가 불쌍해지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현재 4달째 백수생활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습니다. 딱히 대외적으로 내세울만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를 해나가는 시간만큼 자리에 멈춰 서서는 시간도 중요하다는 게 현재 제 생각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하며 살아갑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용을 쓰고 몸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행동한 무언가를 통한 진짜 성장은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납니다. 음식물을 통한 영양 섭취는 음식물을 먹거나 그것을 씹는 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양섭취는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먹고 난 후 식사활동을 중단한 시간에 일어납니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다 소화시키기도 못할 음식을 입 안으로 계속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뷔페에 가서 무식하게 먹어치운 음식들은 소화되지 못하고 똥으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트레이너들이 벌크업을 할 때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먹으라고 하지 않고 적당히 여러 번 나누어서 먹으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그간 바쁜 삶을 살아오던 저는 이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니,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지기 싫었습니다. 무언가 그럴듯한 일을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하루가 불쾌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들이 이어질 때면 남들에게 뒤처져 인생의 끝자락까지 떨어지지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이런 불안감은 저를 다시 바쁜 삶으로 내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싫어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미 뱃속에 많은 음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구마구 음식을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당연히 소화불량을 유발하고 먹은 음식들을 흡수하기보다는 배출하게 만듭니다.
제가 지금의 백수 기간을 가지기로 한 것은 이런 생각이 극에 달해, 극심한 소화불량을 겪을 때 즈음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하는 것은 많은데 아무것도 남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할 것을 억지로 찾아내 그런 기분을 덮어보려 했지만 그것이 끝나고 나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될 거란 생각에 ‘현타’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타가 무기력증으로 변할 때 즈음, 우연히 본 한 유튜브 영상에서 강한 근력 운동 후 적당한 휴식시간을 취하지 않으면 오히려 근손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몸이 지칠 때면 항상 충분한 휴식을 통해 몸에게 성장할 시간을 줬던 것에 비해 나 자신에게는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휴식시간 없이 이어진 수련의 시간은 오히려 나의 성장을 막고 손실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하던 것을 모두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행동들이 성장이 될 수 있게 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인 백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지금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 양 등이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했냐 아니라 내가 얼마나 습득했냐입니다. 그리고 습득은 한 것을 소화할 때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밀어 넣은 각종 음식들을 올바르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화기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친구가 저에게 ‘너 요즘 뭐하고 지내?’라고 묻는다면 저는 소화 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현재 과한 식사로 심한 소화불량을 겪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