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의 유럽 여행기 10편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서 마시려고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맥주와 볼차노까지 가는 동안
아이가 먹을 체리 1kg와 방울토마토는 뉘른베르크의 숙소에 그대로 남겨졌음을 알고
아침부터 마트로 뛰어다녀 온 수고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체리를 먹일 수 없다는 것에 허탈했다.
무려 1kg의 체리였다.
이후 우리의 이 고난 여행에서 더 이상의 체리는 없었다.
뉘른베르크에서 볼차노까지는 무려 네 번의 환승이 필요했다.
뉘른베르크 → 뮌헨 → 오스트리아의 Kufstein → 인스부르크 → 이탈리아 Brenner → 볼차노까지
이어진다.환승 두 번으로 바로 가는 기차가 있었지만 좌석 예약이 필요했다.
뮌헨으로 가는 동안 좀 더 빠르게 볼차노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니 뮌헨에서 바로 베로나까지 바로 기차가 있었고, 베로나에서 한번만 환승하면 볼차노에서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기차는 뮌헨역에서 좌석 예약이 필요했고, 뮌헨 도착 후 환승 시간은 20분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철도 공사로 인해 지연이 심했던 이체ICE 고속열차는 이 날도 저속 운행을 했다.
다행히 기차는 속도를 내었고 연결편 기차 출발 13~14분을 남겨놓고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 역에 도착해서 바로 사무실로 뛰었다.
뮌헨 역은 이번이 세 번째 오는거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2016년 나의 첫 유레일패스를 찢어버리고 벌금을 물리고, 새로 발급해 준 곳이 뮌헨 역이었고
2019년 렌트카 반납 사무실을 찾으려고 아이를 차에 혼자 남겨두고 뛰어다녔던 곳도 뮌헨 역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뮌헨역 사무실에 늘어선 줄을 보고 또 좌절했다. 시간은 1분.. 1분씩 줄어드는데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입장 제한을 했으며 입장해서도 번호표를 뽑아야 했다.
남은 기차 출발 시간은 3분. 데스크 창구 호출 전광판에 내 번호가 뜨길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입구에서 입장 제한을 하고 있던 직원에게 유레일 패스를 내 보이며 말했다.
"나 지금 이 기차 타야 한다. 그런데 좌석 예약을 못했다. 이 표를 빨리 사고 싶다"
"표 없다. 다른 기차를 타라."
이렇게 십여분간 졸이던 마음은 산산히 부서지며
의미 없는 초조함이 되었다.
'그래, 네 번 환승하면 되지. 환승 한 번으로 가는 고속열차와 겨우 도착 시간은 40분 차이다'
'40분 더 기차타고 늦는다고 이 여행이 더 불행해지겠냐' 하며 여행 시작부터 열흘째인 오늘도 심장 향해 들어오는 이 고난의 창을 꽤나 잘 단련된 심리적 방패로 막았다.
그렇게 완행 기차를 타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의 작은 마을 Kufstein으로 향했다.
기차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자주 정차했지만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람이 많아서 캐리어 두 개를 열차 기둥에 묶어두고서 멀리 떨어진 빈 좌석에 앉아 핸드폰을 열었다.
이제 유레일패스를 써야 할 날은 이틀이 남았다.
베네치아에서 피렌체, 피렌체에서 로마까지 두 구간은 좌석 예약이 필수였고, 꼭 좌석을 미리 예매해서
더 이상 이런 고난은 겪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카드로 좌석 예약을 시도했다.
그러나 안 된다.
카드 결제를 하려면 문자 인증번호를 넣어야 결제를 할 수 있는데 유레일패스 어플에서 좌석 구매는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유럽 쓰리심으로 유심으로는 한국에서 보내는 문자를 받을 수 없었다.
한국 유심을 바꿔서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쓰리심 유심으로 바꿔서 어플의 결제 화면에 인증번호를 넣어보려고 했다. 문자 인증 시간은 1분 30초에 불과했다. 짧아도 이렇게 짧을 수가 있나...유심을 두 번 바꿔서 문자를 확인하고 다시 입력하려면 최소 3분은 필요했다. 두 번, 세 번 해 봐도 실패했고 가는 동안 아내에게 또 도움을 청했다. 아내 카드 번호와 인증번호를 넣으니 내 이름으로 된 카드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계속 결제 실패했다.
아내와 대화하며 내가 타야 할 기차 시간을 알려 주었지만 아내는 그 기차를 찾지 못했다. 더구나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의 알프스 산악 지대로 가면서 인터넷은 점점 느려지다가 끊어졌다 연결되었다 했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사이 쿠프슈타인에 도착했다.
주어진 환승 시간은 10분이었는데 기차는 5분 지연되었고, 남은 시간은 5분이었다. 기차에 탔던 엄청 많은 사람들이 내리느라 기차 출입문 앞엔 사람들이 가득했고 문이 열리자 쏟아져 내렸다. 나도 서둘러 내려야 한다. 그리고 연결편 기차가 서 있는 플랫폼을 찾아 뛰어야 한다.
그런데 기차 기둥에 캐리어를 묶어둔 자물쇠가 안 열린다.
열쇠 구멍에 열쇠가 안 들어간다. 힘을 다해 열쇠를 우겨넣 듯 집어 넣었다.
열쇠가 안 돌아간다.
미쳐....
'내려야 한다고. 열쇠야 좀 돌아가라.'
힘을 조금만 더 주면 열쇠가 꽂힌채로 부러져버릴 것 같다. 순간, 영화 쓰리데이즈에서 러셀크로우가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간수들 출입문을 막으려 열쇠를 꽂아 넣고 부러뜨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상태에서 힘을 더 줘서 열쇠가 부러져버리면 난 영영 이 기차에서 못 내린다.
하....
이제 남은 환승 시간은 3분...
여기 쿠프슈타인 Kufstein역이 얼마나 큰지,
플랫폼이 몇 개인지, 인스부르크로 가는 기차는
몇 번 플랫폼에 서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이제 열쇠는 빠지지도 돌아가지도 않는다.
아이는 옆에서 울 것처럼 발을 동동거리며 보고 있다.
아아아악악!
제발 좀 돌아가라고.!!
그 때, 열쇠가 돌아갔다.
다친 손으로 캐리어 두 개를 양손으로 들었는지 끌었는지 모르겠지만 뛰었고 뒤따라 오는 아이에게 소리쳤다.
"뛰어! 뛰라고!"
미친듯이 뛰었다. 이어지는 연결편 기차가 선 플랫폼까지는 족히 100m는 되었다.
나의 작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큰 화각를 펼쳐
1초만에 인스부르크라고 쓰인 전광판을 보고 기차를 탑승했다.
휴...............
날은 폭우가 내려 서늘했고 흐리고 구름 가득했는데도
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붉은 색 시트의 자리에 앉자
그제야
나도, 아이도 한숨을 돌렸다.
그러기를 10초쯤 흘렀을까. 예정대로 기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차가 왜 뒤로 가지? 어?? 왜 이래..????
내가 탄 기차가 아니라 옆 플랫폼에 서 있던 기차가 출발했고, 나는 멍하니 떠나는 기차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11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