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음식에 대한 자유도가 현저하게 낮아졌다. 무엇을 먹으려고 생각을 할 때마다, 이 음식을 먹어도 되는 것인지 반문해야 한다. 이 음식을 먹어서 살이 찌는 것은 아닌지, 혈당이 높아지는 것은 아닌지, 그런 따위의 관점이 아니다. 이 음식에 새우가 포함되어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모든 음식의 순간 앞에서 이 고민을 하고 있다. 고민의 결과가 분명하지 않으면, 그 음식은 선택되지 않는다. 아니, 그 고민의 끝에 선택된 음식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닌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을 찾다 보니, 오늘 급격한 우울감이 몰려왔다. 나도 오늘은 치킨을, 피자를, 떡볶이를, 탕수육을, 마음껏 먹고 싶었다.
억울하다.
도대체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길래, 2025년은 나에게 빼앗아가기만 하는 것인가? 더 빼앗을게 남았나? 그럴 거라면 아예 나의 식욕을 빼앗든, 우울감을 빼앗든, 제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빼앗아 갔으면 좋겠다.
화난다.
나를 자칫 죽음으로까지 몰고갈 수 있었던 새우를, 내가 살기 위해 무언가를 섭취하려고 할 때마다 떠올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게 화가 난다.
서글프다.
그럼에도, 나는 살기 위해 내 손으로 음식을 해야 하고, 내 손으로 설거지를 해야 한다. 내가 해 먹지 않으면 결국 배고픈 것도 나 자신이다.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해 먹기에 앞서 밀린 설거지를 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힘들다.
편도 1시간 거리를 운전하며 출근과 퇴근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 여간 힘들다. 평소에도 힘든 일이었는데, 아나필락시스를 겪고 난 뒤에는 더욱 힘들다. 아침이 되면,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먹는다. 집에서 먹고 나가지 않으면 무엇이 들었을지 모르는 집 밖 음식을 마주해야 하기에, 집에서 먹고 나가는 것 외에는 아직은 선택의 여지가 딱히 없다. 그러고 나면, 운전해서 출근하는 그 길은 이미 지쳐있다.
퇴근길은 또 다른 힘듦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목이 붓는 느낌을 받는다. 식도가 붓는 듯하다. 이 또한 과민반응의 일종이라고 알고 있다. 출근해서 오전부터 쌓인 스트레스와, 몸에 새로 들어온 음식으로 인한 과민반응 등이 누적된 결과라고 추측하고 있다. 목이 붓는 느낌과 함께, 목 주변과 얼굴 등에 열감이 퍼진다. 눈은 곧 끓어오를 것처럼 화끈거린다. 상대적으로 차가운 손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수시로 어루만지며 열감을 끌어내리려고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그 상태로 운전대를 잡는다. 현기증이 있기도 하고, 두통이 있기도 하다. 이제는 해가 무척 짧아져서, 퇴근길이 많이 어두워졌다. 평소에도 밤 운전은 피곤한데, 피곤이 가중된다.
회사에 있는 시간도 여간 힘들다. 출근을 하고 나면,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 회사는 급식을 제공하는데, 급식 메뉴에 새우가 들어간 것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영양사 선생님께 매일 메일을 보내 묻는다. 그러고 나면 내가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무엇인지 정해진다. 안타깝게도, 우리 회사 급식에는 간을 새우젓으로 맞추는 것 같다. 웬만한 국류는 새우젓이 들어간다. 내가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은 밥, 새우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 샐러드, 정도이다.
이래저래 만신창이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또 내 손으로 밥을 차려 먹는다. 증오스러운 새우를 떠올리면서.
외롭다.
결국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것이다. 먹을 수 있는데 선택적으로 먹지 않는 자와, 먹을 수 없으니 못 먹는 자는 근본적으로 이미 다르다. 닿을 수 없는 양극에 있는 것이다.
지친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쳐간다. 내일도 회사를 출근해 어떻게 버틸지 자신이 없다. 올해 남은 휴가가 얼마 없지만 충동적으로 휴가를 써버릴까 생각을 했다. 휴가가 더 필요하게 되면 그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결국 나는 내일 출근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생각으로 고민으로 지치기만 할 뿐이다.
두렵다.
이 모든 것이 짜증이 나서, 아무 음식이나 먹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두렵다. 또 숨 쉬기가 어려워지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혈압이 떨어지고 응급실에 실려갈까 봐, 두렵다.
이 괴로운 감정의 굴레를 반복하고 있다. 2025년 10월 26일 새벽 3시 30분 이래로, 만 4일이 되지 않은 지금까지. 고작 4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날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꼭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