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로 돌아가 아내를 깨웠다. "나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아."
토요일 밤, 배앓이를 했다. 저녁으로 먹었던 대하나 연어가 문제였겠지 싶었다. 누워서 쉬면서 몸을 추스르고 나니 괜찮은 듯했다.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잠에 들었는데, 새벽에 목 뒷덜미가 뜨끈뜨끈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전기장판 때문인가 싶었다. 그러다 느낌이 이상해서 목 주변을 만져보았는데,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만져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졸려서 다시 잠을 청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려운 느낌에 다시 깨고 말았다. 이번에는 두드러기가 양팔에서 만져졌다. 배도 사르르 아파서 화장실을 가보았다. 거울을 마주 보고 목덜미 주위를 살폈는데 단순 두드러기 수준이 아니었다. 수포라 부를 만한 크기의 것들이 듬성듬성 나있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누웠는데,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 순간, 4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4년 전, 무화과를 먹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무화과를 먹고 양손에 두드러기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무화과가 나와 맞지 않나 싶었다. 그 뒤로 무화과 케이크를 먹었는데, 역시나 양손에 동일한 부위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그래서 나 스스로는 무화과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건강검진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선택해 받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화과에는 알레르기가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오히려 망고와 새우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결과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망고와 새우는 여태껏 맛있게 잘 먹어왔고 알레르기와 관련된 아무런 증상도 나타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사결과가 잘못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알레르기 검사 결과에서 새우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결과를 떠올리자 아차 싶었다. 저녁으로 먹었던 대하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의 증상이 알레르기 증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장 근처에 응급실이 어디 있는지 검색을 했다. 다행히도 캠핑장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응급실이 있었다. 두드러기가 올라온 피부에 생수병을 가져다 대면서 간지러움을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당장 응급실에 가야 하나... 그럼 이 새벽에 차에 시동을 걸고 소란스러워질 텐데... 다른 텐트에 민폐일 수 있는데... 가라앉을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볼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쯤, 이번에는 하체에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다. 만져보니 두드러기가 골반부터 발끝까지 뒤덮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도 부어있었다. 불현듯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직감이 스쳤다. 텐트로 돌아가 아내를 깨웠다. "나 응급실 가야 할 것 같아." 아내는 적잖이 놀랐다. 그럴 수밖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텐트를 나섰다. 아내는 운전대를 잡았고, 나는 이유 모를 복통도 느끼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목덜미와 귀에도 두드러기가 번지는 듯했다. 그리고 숨이 조금 가빴다. 가슴에 통증도 느껴졌다.
응급실 앞에 도착해 접수를 하는데, 서있기가 힘들었다. 아내가 접수를 하는 동안 나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붙잡고 버텼다. 응급실에 들어서니 간호사가 증상을 물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있고 전날 새우를 먹었다고 답했다. 혹시 숨 쉬기에 불편하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응급실이 분주해졌다. '아나필락시스'라고 누군가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베드에 누우니 코에 산소를 주입하는 관을 끼웠다. 과호흡 상태이므로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입으로 숨을 천천히 뱉으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만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팔에 수액도 꼽았다.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를 주사한다고 했다. 혈압을 재는데 매우 낮다고 했다. 혈압이 안정되어야 응급실 안에서도 일반 구역(?)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거듭해 혈압을 측정했고, 정상 혈압에 도달한 뒤에야 일반 구역에 위치할 수 있었다. 수액을 모두 맞고 나니 온몸에 퍼져있던 두드러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급박한 상황이 지나고 나니, 캠핑장의 캠핑기어들이 걱정되었다. 철수를 해야 하는 일요일 아침이었기 때문이다. 캠핑장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텐트를 철수하기에 앞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 부부는 철수하는 날 아침식사는 보통 컵라면으로 해결하는데,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알레르기에 의한 아나필락시스가 의심되었기 때문에 라면의 성분에 새우가 포함되었는지 꼼꼼히 살폈다. 다행히도 새우가 포함된 제품은 아니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철수를 하려는데, 다리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바지를 걷어 올리니 두드러기가 다시 양다리에 퍼져있었다. 곧이어 온몸에 두드러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황당함과 속상함이 뒤섞였다. 대체 왜 또 이러는 건지... 결국 몇 시간 만에 또다시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 들어서니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를 분께서 무얼 먹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컵라면을 먹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 드시면 어떡해요!"
나는 정말 억울했다. 첫 번째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응급실에서 나서면서 아침식사를 해도 괜찮으냐고 내가 물었었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는 "네 괜찮아요"라고 답했었다. 나는 그 대답을 신뢰하고 식사를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응급실에 방문했을 때, "면역이 떨어져 있으니 새우가 아니더라도 밀가루나 계란 그런 것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내가 반문하고 싶었다.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해요!'
두 번째 응급실 내원에서는 항히스타민제와 스테로이드제를 엉덩이주사로 간단히 처방받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이 병원을 내원하지 않겠다고 아내와 다짐했다.
캠핑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퇴실 시간이 거의 임박해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휴식을 권했고, 고맙게도 아내가 대부분의 캠핑 기어를 철수했다. 캠핑장 사장님도 사정을 이해해 주시고 퇴실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별 다른 추가금액 없이 퇴실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저녁은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흰 죽을 먹었다.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출근이 어렵다고 판단해 휴가를 내고, 끼니는 역시나 죽만 먹었다. 이제 다시 출근을 해야 하는 화요일부터가 걱정이다. 회사에 가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을지 말이다.
- 2025년 10월 26일,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