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도 Jul 19. 2024

뇌출혈, 생과사를 헤매는 동안의 가슴 아픈 기록(6)

그녀가 나에게 보내준 연서(3.24, 3.25, 3.26)

3.24(금) 그녀의 카톡 기록


여보! 당신이 오늘 처음으로 말하기 시작했어 8일 만에..


마누라 너무 기뻐서 동네방네 소문 다 냈어!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28주년 결혼기념일인데, 당신이 내일 머리 튜브 제거하는 거 잘 이겨내면 내가 선물로 퉁쳐 주기로 했어 당신도 기쁜지 웃었어!


너무 잘 버텨 주고 마누라 마음 이해해 주는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가슴 벅차!


첫째가  다음 주 화요일 당신 보고 가겠다고 늦은 저녁 비행기로 티켓 예매 하고..


가기 전 한마디만 듣고 가는 게 바람이었는데 오늘 당신이 해줬어! 너무도 고맙고 사랑해!


당신 말한 기념으로 오늘 우리 피자를 오븐에 구워 먹었어, 마누라는 와인도 한잔 했어~


이건 머리에 튜브만 남은 당신 사진(생략)이야 그전보다 정말 예뻐지고 깔끔해진 모습이야


그전엔 목 머리 코 입 모두 선이 한두 개씩 꽂혀  있었어


지금 하나 남은 머리 부분은 내일 제거 시술에 들어갈 거야


잘 이겨내면 션트 시술이 없을 테고 부작용이 생기면 해야 하는데..



https://youtu.be/_H8XS-ROa9U?si=ckQdaUFwoY5ICL40


"이선희 - 소녀의 기도"


당신에게 들려주려 준비한 노래인데 차 시동 켜니 이곡이 나와 놀랬어!


병실에서 둘이 버즈로 들었어


어제 당신 목소리 처음 들었어


오늘은 머리 튜브를 제거하는 날이고 잘 돼서 부작용 없으면 어서 한국 가자!


아침엔 의미 없이 던진 뻥지게이죠(Pao de queijo) 못 생겼다는 내 말에 둘째가 눈물을 보여 마음이 아파!

 

본인한테 한 말이 아니고 그냥 한 말인데 왜 그리 마음에 여유가 없는지 모든 것을 막아내 버리네!


첫째 보내고 남은 시간들을 둘이 보내야 하는데 벌써 걱정이 돼!


오늘 당신 수술 잘 되면 좋겠다 더 바랄 게 없네!!



3.25(토) 그녀의 카톡 기록


오늘도 어제처럼 좋을 줄 알고 기대가 컸는데 30분 내내 잠만 자서 기분이 우울해졌어!


모두의 마음을 전혀 모르듯이 깨워도 잠만 잤어!


오늘 제거 예정인 머리 튜브도 그대로이고, 치료가 길어져 한국 일이 늦어질까 두려움이 밀려왔어!


어서 나아야 근육도 잃지 않고 재활 시간도 짧을 텐데 내가 두려우니 어서 일어나 줘!!



3.26(일) 그녀의 카톡 기록


여보 당신!!


어제오늘 내 말도 이해 못 하고 불러도 불러도 잠만 자고 너무 슬프고 속상해!

오늘 오전에 에두아르도 7세 공원에 다녀왔어


오는 길에 당신이랑 갔던 카페에 들러 아점도 했고 너무나 화창한 봄날이다 거리에 사람들이 부러웠어.


현재 당신 상태는 거의 음식주입 호스 하나, 머리에 호스 하나 2개 남아 있어.


지난 금요일에 머리 쪽 호스는 제거 예정이었는데 당신 회복 상태가 늦는 거 같아서인지 아직 그대로야!


다음 주 화요일 첫째가 일본으로 출국하고 화요일 점심은 도와준 분과 함께 하기로 했어!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


마누라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 대책도 주지 않고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답 좀 해 봐!



오늘은 당신이 사둔 국수에 신김치를 참기름에 주물 주물해  김치말이 국수를 만들었어!


당신한테도 이렇게 잘해 줄 걸


일한다고 돈 번다고 매일 그렇게 혼자서 떨어져 살았네!



돈 아무것도 아닌데...


이전 09화 뇌출혈, 생과사를 헤매는 동안의 가슴 아픈 기록(5)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