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 애 낳는 건 '신선놀음'

by 김윤담

입덧은 6개월 무렵까지 계속됐고, 그 사이에도 남편은 몇 번의 출장을 떠나면서 임신 기간 동안 친정에 머무른 날들이 꽤 있었다.

어차피 엄마는 일을 했기 때문에 따로 보살핌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이 없는 기간 동안에는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친정에 지내면서 친구들이라도 자주 만나는 편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덧 때문에 친정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가면 금세 다시 우리 집으로 오고 싶어 졌는데 바로 '엄마와 아들', 즉 내 남동생을 보고 있기가 불편해서였다.


엄마는 늘 아들에게는 쩔쩔매는 타입이었는데 나와는 전혀 다른 그 태도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당시 동생은 경찰공무원을 준비 중이었고, 엄마는 중요한 시험을 앞둔 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늘 긴장하고 있었다.


냉동실에 얼려뒀다 데운 밥을 내어주자, 냉장고 냄새가 난다며 밥투정을 하는 아들에게 '잠시만 기다려라, 금방 새 밥을 해주마'라며 쌀을 씻는 엄마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입덧 때문에 집에 잠시 와 있는 누나에게도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며 온갖 히스테리를 부리는 동생을 보고도 엄마는 그저 '네가 참으라'고만했다.


늘 그런 식이 었다. 수능이 끝나고나서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돈 버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나는 그게 당연했고, 심지어 내가 생활력이 강한 건 불행한 가정사가 한몫했다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뜨악한 발언들도 서슴지 않았지만 동생이 어쩌다 서빙 아르바이트라도 한 달 하면 행여 몸이 닳을까, 서러울까 그저 안쓰러워 밤 12시에도 삼겹살을 구워다 바쳤던 엄마였다.


심지어 집으로 배달된 운동기구도 동생은 조립하는 시늉만 하다 포기하고, 결국 배 부른 내가 낑낑거리며 완성했다.


그런 동생을 보며 엄마는 '쟤가 지 아빠 닮아서 손이 야무지지를 못하다고, 참 일머리 없다'며 들어가란 말 뿐이었다.




처음엔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했다.


첫째 딸로서 세상살이를 한다는 게 참 버거웠어서, 내 자식에게만큼은 그런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첫째가 딸이라면 절대로 둘째는 갖지 않으리' 혼자서 굳은 다짐도 했었다. 지독하게도 차별적인 내리사랑을 내 아이에게만큼은 겪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산부인과에서 '공주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뭐랄까 마음이 한 칸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를 그토록 싫어하는 내가 딸을 키울 수 있을까. 내가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수없이 많은 물음표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러다 불안한 마음 앞에 서서 다짐했다.


'아가야, 너는 외롭지 않게 해 줄게.
다른 건 몰라도 마음만은 통통하게,
구김 없게 채워줄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명랑하게 해 줄게.'




시간이 지나 '배가 남산만 하다'는게 이런 뜻이었구나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배는 부풀어 올랐고,

드디어 내 생일날 저녁부터 싸한 진통이 시작됐다. 그다음 날 아침 진진통이 와서 병원에 입원했고,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다.


남편에게 양가 모두 아기를 낳으면 와달라고 해달라 부탁했지만, 진통 소식을 들은 엄마는 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달려서 기어이 내가 있는 병원으로 왔다.


불행과 트라우마의 시작이었다.


엄마와는 출산 전부터 아이를 낳으면 오기로 합의가 끝난 상황이었지만, 그 약속을 깨고 달려온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친구들이 딸이 아기 낳을 땐 친정엄마가 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보통의 모녀 관계에서나 해당되는 얘기 아닐까.


보아하니 정말 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친정엄마로서 보여지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온 듯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너무 꼬인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더 읽어주길 바란다.


전날 7시경부터 시작된 진통은 다음날 오후가 되도록 진전이 없었다. 이미 12시간을 넘겼음에도 자궁문은 3cm 밖에 열리지 않았고, 그럼에도 분 단위 간격의 진통을 견디느라 나는 이미 진이 빠져 있었다.


애초에 그 산부인과를 택한 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남편과 나의 교감만으로 진통을 이겨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진행이 더뎌도 촉진제를 쓰지 않고 기다렸던 것인데, 엄마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옴과 동시에 내가 그렸던 출산의 로망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일단 빵을 가득 사온 엄마는 남편에게 먹으라며 갖가지 빵 종류를 내 앞에서 풀어놓기 시작했다.

진통하는 딸을 지키느라 사위가 배고플까 걱정하는 건 고마웠지만, 열 두시간 째 물도 제대로 못마시고 진통까지 겪고 있는 건 나였다.


이번에도 엄마에게 신경 쓰이는 건 내가 아니구나 싶었다.


대체 엄마에게 우선순위란 어떤 기준이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진통은 더욱 심해졌지만 내진을 한 간호사로부터 "깡깡 멀었다"는 말을 듣고 절망하고 있을 때, 엄마는 본격적으로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비가 오던 그날, 이 병원으로 오기까지 길이 얼마나 미끄럽고 안개가 심했는지, 당시 외할머니가 투병 중이셨는데 병원에서 할머니의 대변을 치우던 이야기, 살갑지 못한 외숙모에 대한 험담, 본인 친구 딸 들의 출산기, 그리고 본인의 출산기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역시 내가 우려했던 엄마의 모습. 절대로 악의는 없는, 그냥 본래 저런 사람. 딸이 아이를 낳는 그 날까지도.


그냥 낳고 나서 알릴 걸, 왜 남편을 말리지 못했나. 후회해봐도 늦은 뒤였다.


얘는 소리를 안 지르네. 요즘에는 애 낳는 거 참 좋아졌다.
이렇게 독방에서 진통을 하고,
나 때는 옆에서 산모들이 어찌나 소리소리를 지르고,
시끄러웠다고.
얘는 주사를 맞아서 그런가 소리도 안지르네.
그때에 비하면 신선놀음이야. 신선놀음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면 골 백번은 더 질렀을 거다. 엄마가 없었다면 좀 더 편하게 내지를 수 있었을 거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아이가 숨을 잘 쉬지 못한다기에 이를 악 물고 참고 있는데…. 그리고 나의 약한 모습을 엄마에게 보이기 싫어 죽을 힘을 다해 참고 있는데, 이미 24시간째 진통에 시달리고 있는 딸에게 '신선놀음'이라니.


당장 나가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내 출산과정마저도 엄마와 싸우느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등 돌리고 누워 엄마를 외면하고 있었지만 엄마는 내 뒤통수에다 대고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출산을 보러 갔다는 소식에 궁금해 전화를 건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신선놀음이다 야. 신선놀음. 소리도 안 지르고 조용해"


진통이 30시간째 이어지면서 나는 진이 완전히 다 빠져버렸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엄마도 보호자 침대에 앉아 졸기 시작하고, 보다 못한 간호사가 어머니는 집에 가서 계시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하자, "그렇겠죠? 애가 너무 안 나오네." 하며 우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진통이 시작된 지 이튿날 되던 오전 9시경 아이가 나오기 직전에 엄마가 돌아왔다. 지쳐서 울음이 터진 나를 보며 엄마는

"이제 진짜네. 진짜 아프네."

라면서 손을 쓰다듬었다.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을까. 그럴 거다. 분명, 약 올리려 한 말은 아니었을 테니.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세 번의 힘을 준 끝에 드디어 울컥, 아이가 쏟아져 나왔다. 38시간의 지긋지긋한 진통 끝에 만난 아이에게 처음으로 젖을 물리고 경이로운 출산의 순간을 맞이했다(다행히도 막바지 출산 과정은 남편만 내 곁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우렁차게 우는 모습을 본 엄마는 마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내가 미역국 한 술 뜨는 것도 보지 않은 채 가버렸다. 아이가 나오는 타이밍에 거의 맞춰 병원에 도착하신 시부모님은 그렇게 쌩 가버리는 친정엄마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신 눈치였지만, 내게는 그리 놀라운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서른여덟 시간의 출산 기억은 아직도 경이로움과 악몽이 뒤섞인 반반의 추억으로 남았는데, 특히 엄마의 '신선놀음' 발언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고, 똑같은 강도의 분노로 다가왔다. 언젠가 엄마에게 꼭 사과받고 싶었다.


아이의 돌이 다 되어갈 무렵, 엄마와 통화하던 중에 그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는 딸 아기 낳을 때도 '신선놀음'이라고 한 사람이잖아. 나한테 언젠가는 사과할 거지?"라고 얘기했더니, 발끈했다.


"너 같은 애 무서워서 무슨 말이나 하겠냐"는 거였다.

본인 아기 낳을 때 하고는 시설이며 상황이 너무 달라져서 그냥 한 말이었는데, 넌 그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느냐고 했다.


'그게 그렇게 서운했니, 내가 생각이 짧았다. 별 생각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라고 이야기했으면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어쩌면 너무 쉽게 풀릴 마음이었다. 그게 아니라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었으면 묻어두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뻔뻔하기까지 한 엄마의 태도에 놀라 나도 속에 담아뒀던 말이 쏟아졌다.


엄마는 내 인생에 중요한 순간들마다
나타나서 다 망쳤지.
상견례 때도,
결혼식 때도,
심지어 애 낳는 날까지도.


그럼 손주 태어나는 날 웃지, 우냐?
장례식장 가서도 사람들 웃고 떠들어.
애 낳는 게 무슨 격식 차릴 일이라고
가서 입 닥치고 앉아있으리?


물론 딸이 진통할 때 옆에서 엄마가 '신선놀음한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 말의 의도도 백번 양보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상처가 됐다는 딸에게, 출산을 장례식에 비유하며 노발대발하는 엄마의 모습이란.


내가 아무리 난리를 치고 울어 재끼며, 그게 아니라 제발 내 마음 좀 봐달라고 소리쳐도. 엄마는 눈과 귀를 막고 화만 낼 뿐이었다.


"네가 나랑 의를 끊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안 보고 살면 되겠네!"

결국 엄마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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