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날, 메이크업 샵에서 분노를 참아본 적 있나요

by 김윤담

결혼식 당일 새벽, 메이크업 샵을 가기 위해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밤새 기침을 하며 방과 부엌을 오가던 동생 때문에 제대로 눈도 부칠 수 없었고, 중학교 1학년 때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결혼식장에서 보게 된다는 생각에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상견례 이후, 내 결혼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식에 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나도 엄마가 혼주석에 혼자 앉아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결국 수락했다) 그날 누군가 집을 나서는 내 표정을 봤다면 결혼식을 올리러 가는 사람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거다.


내게 결혼식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점이기도 했지만, 지긋지긋한 본가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는 D-day이기도 했다. 그래서 설렘보다는 뭐랄까 비장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상견례 이후 결혼식날까지 그 사이에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나를 괴롭게 만들었더랬다.




십수 년 만에 딸 결혼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엄마에게 자신의 양복 치수를 알려왔다고 한다. 황당함이 너무 커서 기분 나쁠 여유도 없었는데, 엄마가 더 노발대발이었다.

그렇게 내 결혼을 한 달여 앞두고 다시 부모가 목청 높여 싸우는 지긋지긋한 소리를 또 들어야만 했다.


"양육비 한 푼을 줬냐. 생활비를 줬냐. 딸내미 결혼한다는데 돈은 못 보태줄 망정 양복 타령이냐"


하도 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한 터라 이미 모든 내용을 다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엄마는 또 내게 그 치사하고 치졸한 상황을 굳이 설명하며 전과 똑같은 강도로 분노했다. 분할만 했다. 지난 세월 자나 깨나 일 생각뿐, 여러 사람들 상대하면서 힘들게 돈 벌어 자식을 건사한 건 엄마였다. 그래서 자식, 아니 딸에게만큼은 그 모든 설움을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은 그 마음 나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결혼식을 앞둔 예민한 시기, 다시 맞닥뜨린 부모의 갈등은 결코 내가 새로운 인생을 위한 준비에만 집중할 수 없게 했다.


'역시 이 집에 있는 동안은 다가올 내 행복과 과거의 불행 사이에서 끊임없이 애써 중심을 잡아야겠구나.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애를 써야만 하는구나' 싶었다.




아직 한밤처럼 깜깜한 새벽, 샵에 도착해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일까. 피부는 완전히 뒤집어졌고, 코에는 엄청난 크기의 뾰루지가 올라와 있었다. 메이크업으로 가릴 수 있는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거의 포기상태였다.


'될 대로 돼라 오늘만 지나가면 되니까'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내 결혼식에 들뜬 건 오히려 엄마였다. 평소에도 미인 소리를 자주 듣는 엄마는 화장을 하지 않으면 슈퍼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날 메이크업을 받는 내내 샵 직원과 하하호호 수다를 하면서 뒷머리 위치는 세 번이나 조정했다.


심지어 내 드레스 헤어조차도 얘는 뒤통수가 없어서 머리를 높게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수정을 거쳤다.


그날은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세상은 요지경' 신신애 머리와 꼭 같았다. 샵 직원들도 지쳤는지,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그냥 들어줬던 것 같다.


메이크업 샵에서는 '정말이지 내가 왜 이럴까' 싶을 정도로 엄마 목소리가 듣기 싫어 미칠 것 같았어서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고, 나 예뻐지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못썼다.


오로지 무언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다.


내 결혼식에 들떠 보이는 엄마의 모습, 전혀 나쁠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속으로 '네가 이상한 거지, 네가 예민해, 네가 좀 과해. 네 엄마 그래도 고생하면서 이만큼 살아왔는데, 이런 날 들뜰 수도 있잖아' 생각하면서도 치밀어 오르는 형체 없는 감정을 컨트롤하기 너무 힘들었다.


역시 문제는 내가 다 안다는 것. 알고 있으면서도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결론은 내가 늘 나쁜 년인 쪽으로 난다는 것. 그래서 늘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것 같았나 보다.


예식장으로 가는 차 안, 그날 동행한 친구는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좀 웃어보라고 했지만, 정말이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그 힘겨운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예식이 시작됐다.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혼인 선서와 함께 해외에 있어 오지 못한 친구들의 영상편지가 나왔고, 축가가 이어졌다. 틀에 박힌 방식이 아니라서 분위기는 나름 화기애애했다.


예식의 마무리 단계, 양가 부모님께 인사. 먼저 신부 측부터 인사를 하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실루엣을 보았다.


식전에도 따로 인사를 나누지 못했던 터라 나는 그대로 굳었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타이밍을 놓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자세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다음 남편 측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가 되어서야 제대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내 모습을 본 이모가 '저 년이 부모한테 인사도 안 한다'라고 혀를 끌끌 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행히 이날 결혼식은 남편 ROTC 후배들의 장난 스런 예도 덕분에 웃으면서 끝을 맺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난 뒤 뷔페에서 아버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사실 인사를 나눴다기보다는 밥을 먹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아버지가 어색한 말투로 "그래, 니들 잘 살아라 응?" 하고 뒤돌아 간 것이 전부였다.


너무 오래되서일까? 백발이 성성해진 아버지의 모습은 오히려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 더 이상 아버지는 내 마음속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 가득 찬 건 오로지 엄마뿐이었다.




어쨌든 드디어 끝, 공식적으로 출가외인(남녀차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꼽히지만, 난 정말이지 출가외인이 되기를 소망했다)이 되었다.


본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림을 차렸으니 엄마와 그렇게 물리적으로 거리가 생기면 우리 사이도 조금은 편해지겠거니. 결혼하면 친정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던데, 나도 결국은 그렇게 되겠거니. 막연히 그런 소망을 하며 신혼여행지인 파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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