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5년 차, 아직 20대 후반이었지만 나는 결혼이 하고 싶었다. 사실 '결혼'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기보다 남자 친구와 같이 붙어있고 싶었다. 선선한 저녁에 집 앞을 산책한다던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난 일요일 아침엔 맥모닝을 시켜먹고, 헐렁한 반바지 차림으로 편의점 앞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그와 함께라면 좀 명랑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이지 결혼은 차라리 너처럼 아무것도 모를 때 했어야 해, 아님 아예 하질 말던지' 맞는 말이다. 난 정말이지 단순한 생각으로 결혼을 결정했고, 실행했다.
"나 이 사람이랑 살고 싶어."
누군가에겐 단순한 결혼의 이유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누구보다 간절했다. 내 집 같은 집,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봐주는 사람과 가까이 살 부비며 살고 싶었다. 그런 이와 함께라면 단칸방 원룸이라도 좋았다. ‘엄마 집 말고, 우리집에 살았으면..’ 이 마음이 결혼 결심의 절반은 차지했다.
엄마와는 마주 앉아 밥을 먹다가도, 나란히 앉아 TV를 보다가도 말다툼이 일었다. 정말 사소하고 유치한 시작이었음에도 죽자고 달려들어 결국 다신 안 볼 사람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결말은 늘 같았다.
"나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여긴 내 집이니까 네가 나가"
엄마는 늘 TV에 나오는 연예인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들의 차림이나 외모, 말투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발견하면 그 이야기를 집요하게 반복했는데, 그게 나에겐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한번 이야기를 했음에도 설거지하다가, 빨래를 개다가, 운전을 하다가, 문득문득 똑같은 얘기를 몇 번씩이고 똑같은 억양으로 반복했다. 대개의 중년 여성들은 그렇다던데,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알면서도 싫었다.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건 둘째 치고, 엄마의 생각들에 동의할 수 없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더럽게 어떻게 짐승과 함께 사느냐고, 저 집 애는 왜 저렇게 우느냐고, 우리 애들은 안 그랬다고, 저 사람은 장사를 왜 저렇게 하느냐고,
타인이 싫은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을 늘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라는 사람, 정확히 말하면 그런 류의 '인간'이 싫었다.
엄마는 본인을 늘 정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작 딸의 감정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 한채, 귀를 막고, 가장 큰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면서 스스로에게는 그토록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싫었다. 본인은 늘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도리를 다 한다고 했지만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한 엄마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기준엔 모두 이상한 사람들 투성이었고, 그들의 단점을 일목요연하게 나열하느라 엄마는 매일 머리가 아팠다.
잠자코 듣다 제발 그만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어 질 때쯤, 용기 내 겨우 심드렁하게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지", "그냥 무시해" "난 그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라고 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하며 화를 냈다.
"너는 참 이상하다"
내가 엄마의 하소연을 귀엽다는 듯 들어주며 살갑게 맞장구 쳐주는 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럼 우리는 얼마나 편했을까. 하지만 근본적인 관계의 해결없이 모범답안 같은 생각만으로는 결코 다정한 딸이 될 수 없었다.
상견례 날이 잡히고, 한정식 집에서 남자 친구의 부모님과 나, 엄마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마침 어버이날이었던 터라 우리는 예쁜 꽃다발을 두 개 사서 부모님께 드렸고, 식사 내내 분위기는 그럭저럭 어색하지 않게 잘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그때 어머님께서 조금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야기를 꺼내셨다.
"저기, 그래서… 식날 아버님은 어떻게…?"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아빠요? 얘는 아빠 싫어해요" 악의 없는 그 표정. 그래서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 그 결백한 표정.
나는 목구멍이 컥,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른 채, 반찬만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나를 옆에 두고 엄마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래도 저희 시댁이 다 교사 집안이고, 예술하시는 분도 있고…."
속으로 '엄마 제발'이라고 외쳤지만, 가혹하게도 가닿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시댁의 이야기를 상견례 자리에서 자기 입으로 술술 읊어대는 사람이 나의 엄마라니.
그 집안이 교사 집안인 게, 아버지가 집을 나간 이후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연락 한번 하지 않던 그 사람들, 자기한테 욕지거리를 내뱉던 그들의 스펙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딸 시댁에 대고 이야기하는 걸까.
그래도 그게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그 어리석은 속내를 알 것 같아서 더 속상하고 화가 났다.
그 자리에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상견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울면서 화장실로 달려가는 여자를 식당 직원들은 의아하게 쳐다봤다.
아마 바로 옆에 앉아있던 엄마는 몰라도, 맞은편에 앉아있던 시부모님은 내 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을거다.
드디어 어색한 자리가 끝나고 난 뒤, 엄마는 내 감정 따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홀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 나를 보고 엄마는 대체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나 너무 속상하고, 창피해. 시댁 어른들 앞에서 내가 아빠 싫어한다는 얘기를 그렇게 가볍게 꺼내야만 했어?"
참다 참다못해 울분이 섞여 나왔다.
이번만은 제발 내 외침을 듣고 아차, 싶은 마음이라도 들어주기를 바랐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너는 참 이상하다. 그게 이렇게 눈물바람 할 일이야? 어차피 저 집도 이혼한 거 알고 있고, 늬 애비 결혼식에 오는 거 너도 싫잖아!"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헐떡이면서 울고 있는 내게 엄마는 "오늘 같은 날, 또 이렇게 기분을 망쳐야겠니? 너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았어. 너만 이 난리야 지금 너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 결혼식을 상상하면 항상 아버지 빈 자리가 떠올랐었다. 빈 의자 옆에 홀로 앉아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어쩐지 안됐어서, '정말 싫은 아버지이지만 그날 만큼은 엄마의 면을 세워줘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회사 동료들에게도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아, 내 결혼식날이 되면 다 들통날꺼라고 농담처럼, 진담처럼 얘기했던 것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다보면 결혼식날의 나는 도저히 100%로 행복하지 못할 것만 같은 서러움이 밀려와 퇴근길 버스 맨 뒷좌석에서 참 많이도 울었었다.
나와 충분히 상의하고 나중에 결정해도 될 얘기를 침 뱉듯 쉽게 뱉어놓고, 엄마는 오히려 감히 네가 나를 푼수로 만들었다며 노발대발했다.
이번에도 그 마음 속에 나는 없었다.
또 한 번 나는 엄마로부터 뜯겨져 나왔다.
그 날은 내 결혼식을 위한 상견례 자리였고, 나는 신부였고, 내가 당신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너만 그러느냐고. '너는 참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날에서야 내 목표는 완전히 명확해졌다.
'결혼=탈출'.
엄마와의 심리적 물리적 거리를 위한 작전이 필요해졌다. 더 이상 엄마와 부딪히지 말 것. D_day까지 조용히 지내다 이 집에서 사라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