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하고 백화점의 한 의류브랜드에서 일을 시작했다. 국내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 브랜드였는데 성장속도가 빨라 일이 힘들긴 했지만 배우는 점도 많았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금세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복학을 해야하는 시기가 돌아왔고, 나는 통장에 꽤 많이 모인 돈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돈으로 학교에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것인가.
다시 학교로 간다고 한들 인생에 크게 도움이 될 것같지 않았다. 마침 친구가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 있었던 터라 이참에 함께 유럽여행을 해보고싶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1년 가까운 시간동안 한 집에 사는 엄마와 대화를 단절하고 지내면서 나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충동적으로 비행기 표를 끊고, "파리에서 만나자"라는 왠지 멋진 인사와 함께 진짜로 비행기에 올랐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4시간 정도 친구를 기다려야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풍스러운 건물과 이방인들,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차가운 공항게이트에서 꼼짝도 못한 채 친구를 기다려야만 하는 신세였다. 공항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15분짜리 와이파이를 사용해 친구에게 내가 있는 게이트 번호를 알려주고, 막막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딱딱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먹으면서 이방인의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움에 화장실도 가지 못한채 나 혼자 파리 공항 한 켠에 버려져서 이대로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졌을 때쯤 기적처럼 친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파리에서 포르투, 리스본, 바르셀로나, 로마의 거리를 함께 걸었다.
로마와 바티칸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했는데, 특히 바티칸의 성스러운 무드에 감화되어 돌아보는 내내 가슴의 먹먹함이 밀려왔다. 투어가 끝날 무렵 가이드는 고국으로 엽서를 써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때 나는 지금 나의 남편과, 엄마에게 엽서를 썼다. 그 당시 남편은 남자친구도 아니고 그냥 아는 사이였는데, 엽서를 보내달라고 부탁해서 적은거였고,(이 이야기는 추후에 상세히 적겠다) 엄마에게는 종교적인 바티칸 특유의 분위기에 젖어서 썼다.
하지만 진짜 내 마음의 말보다는 1년 째 한 집에서 서로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는 우리의 사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자조섞인 혼잣말이었다. 이 메시지를 읽은 엄마가 내 마음에 대한 힌트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을지도. 기념품가게 앞 계단에 쪼그려 앉아 비뚤한 글씨를 적어내려가는게 그때 내게는 가장 큰 용기이자 실천이었다.
친구와 3주, 나홀로 3주 총 6주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경유한 이스탄불 공항에서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스와로브스키 귀걸이를 샀다. 엄마에게 주기 위함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돌아간 집에서 선물을 건넸고, 엄마는 고맙게 받았다. 선물을 귀에 걸어보며 본인과 어울리는지 안어울리는지를 여러번 반복해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꽤 긴 시간이 흐른 만큼 엄마에게서 내 공백동안 달라진 기색이 조금이라도 묻어나기를 기대했지만, 역시 내가 바라던 방향은 아니었다.
어찌됐든 6주의 유럽여행은 어영부영 모녀의 관계를 수습해놓은 듯 했다. 다시 수다스럽고, 푼수끼 있는, 일상생활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단점을 내게 털어놓기를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은 돌아왔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경직되어 있었지만 엄마는 그런 나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했다.
적어도 집을 떠나있던 시간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내가 없는 동안 당신은 어땠는지 물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엄마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더 큰 실망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또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내 시선 속 엄마는 역시나 너무 가벼웠다. 그 가벼움이 내 마음을 점차 식어가게 만들었지만, 엄마는 다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틈나는대로 자신의 기구한 팔자를, 그날그날 만난 사람들의 단점들, 돈을 벌기 위해 겪는 치사한 일들에 대하여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멍 하니 듣고 있는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정말 힘들었겠지 않니?'라며 내게 동의를 구했다.
물론 맞는 말이었다. 힘들었을거다. 그래서 늘 듣는 입장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가엽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때로는 그런 내가 이상하고, 스스로 독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끊임없이 동정을 갈구하는 엄마 앞에서 왜 그렇게 난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만 했을까. 나의 20대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의무감과 비호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