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미워하는 방법을 몰라서

by 김윤담

수능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르바이트였다. 스스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처음 일하게 된 곳은 프랜차이즈 피자집이었다. 시간당 3480원, 빨간 베레모를 쓰고 손목엔 손님이 버튼을 누르면 진동이 오는 팔찌를 차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팔랑팔랑 뛰어다녔다. 돈을 벌면서 움직이는 만큼 군살도 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첫 월급날. 지폐와 동전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받아들었을 때의 왠지모를 그 벅찬 감정은 지금 생각해도 풋풋하다. 그 길로 집에 가 엄마에게 봉투를 건넸다. 나도 엄마에게 돈 봉투를 내밀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다니 마음이 부풀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나였다니, 스스로가 귀엽고 애틋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난 늘 대학생이 되면 용돈과 학비를 스스로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엄마에게 그런 약속을 하기도 했었고. 녹록치 않은 집안 사정을 알았기 때문이었을수도 있고, 어려서부터 언뜻언뜻 엄마 아버지로부터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고, 이른바 성인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진짜 성인이 되었다.


생전처음 수강신청이라는 것을 하고, 시간표를 짜면서 가장 중점에 두었던 것은 바로 공강일, 아르바이트를 위해서였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평일에 하루는 휴식날로 정해두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프랜차이즈 도넛가게에서 일했다. 판매될 도너츠에 초콜릿을 입히고, 토핑을 올리는 일이었는데 일보다 힘들었던건 사람이었다.


어찌나 텃세가 심하던지, 매일 저녁 퇴근길 버스정류장에서 울다가 집에 들어갔다. 스무살의 나는 맨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점장에게 5개월은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던 걸 지키기 위해 이 악물고 버텼다. 그 이후로도 이탈리안 레스토랑, 마트 내에 있는 어묵포차, 백화점 의류, 신발코너, 학원강사 등등 학교를 다니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했지만 현실적으로 근근히 용돈을 마련하는 정도였지, 학비를 모으는 일은 언감생심이었다는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엄마에게 1학년 1학기 등록금만 대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보겠노라고 큰소리 쳤던 나는 너무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였던거다.


그렇게 2학기 등록금 납입일이 다가왔고, 나는 어렵게 엄마에게 이야길 꺼냈다. 첫 마디는 "네가 할 수 있다며?"였다. 그러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고, 그래서 나도 속상하다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의 그 말투에 나에 대한 실망이 그대로 전해졌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그럼 어떡하느냐고 되받아쳤다. 학교 이외에 남는 모든 시간을 아르바이트 해도 안되는 걸 어쩌냐고, 한창 오가던 말싸움 끝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꿇어. 네가 뱉은 약속 지키지 못할거면 나한테 빌어. 뭐가 그렇게 잘나서 큰 소리야?" 대드는 딸이 괘씸해서 엄마가 홧김에 뱉은 말이라기엔 듣는 입장에서 너무나 치욕적이었다.


"나 아니면 누가 등록금 대 줄 수 있는데,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고 나를 방으로 밀어부쳤다.


억울해서 울며 소리쳤지만 나에 대한 존중, 혹은 가여움은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엄마의 도움을 받아 등록금을 내고 2학기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여전히 했지만 역시 오가는 교통비와 밥값 정도뿐, 그것도 늘 부족하기만 했다.


어느 겨울이었다. 집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터미널에서 델리만주를 구워 팔 때의 일이다. 친구가 일하는 곳이라 좀 멀어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버스까지 갈아타면서 다녔던 곳인데, 일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보니 마침 주머니에 돈이 천 원도 없었다.


그날 따라 마감조는 친구가 아닌 다른 동생이라 선뜻 버스비를 빌려달라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시를 타고 갈테니 돈을 좀 들고 나와주면 안되겠느냐고, 월급을 타면 돌려주겠다고 말할 참이었지만 "돈 간수를 어떻게 하기에 돈 천원이 없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걸어와."라는 말과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억울함 보다는 민망함이 몰려왔다. 정말 그렇네. 나는 돈 간수를 어떻게 했길래 수중에 돈 천 원이 없을까. 다음 달은 헤프게 쓰지 말아야지. 체념하고 하얀 김을 내뿜으며 길을 걸었다. 워낙 길치인 터라 늘 버스타고 다니는 길을 그대로 따라 갔다. 사람은 건널 수 없는 육교가 있어 어둑한 길을 따라, 표지판을 따라 어찌저찌 집에 도착하고 보니 12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일을 마친 시간은 9시였다. 집에 들어가니 거실에 앉아있던 엄마는 TV 토크쇼에 열중하고 있었다.


왜 지금에야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내게 묻지 않았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방으로 향했다.


그 다음 학기는 큰 고민 없이 휴학을 결정했고, 어디에 가서라도 한달에 100만원씩만 벌어서 일단 돈을 모으자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는 내 결정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화가 났다기 보다는 감정이 차게 식는다는 표현이 맞을까.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때부터 집은 일단 최소한의 잠자리와 씻을 곳이 제공되는 숙소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그에 만족하며 스스로를 투명인간화 시켰다. 역시 엄마는 변한 나에 대해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의 예상대로 철저히 나를 무시해주었고, 그렇게 한 집에서 서로를 외면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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