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내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을까

by 김윤담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까지 과정 속에서의 일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가 남동생과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고, 엄마는 그럴테면 그러라고 했다. 아마도 중학교 입학식 전 날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엄마는 내 짐과 교복을 함께 챙기면서 아버지를 따라가라고 했다.


가기 싫다고, 내가 왜 가야 하느냐며 발악하는 나를 엄마는 벽에 밀치면서 "일단 따라 가라고, 이 썅년아"라고 하며 손에 2만원을 쥐어줬다. (그때 엄마의 달아오른 얼굴, 핏대가 선 목, 어금니를 꽉 깨문 입모양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차피 아버지는 너흴 데리고 갈 곳도 없으니 할머니 집이든 어디든 따라갔다가 차라리 택시를 타고 도망쳐 오라는 거였다. 그때 나를 향해 윽박지르는 그 표정과 말이 물론 진심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와의 팽팽한 기싸움에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한다.


결국 나는 중학교 입학 전날 울면서 아버지를 따라나섰고, 아버지의 차는 할머니 댁 근처 골목에 멈춰 섰다.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차 안에 있었다. 밖은 어두워졌고, 라디오에서는 DJ 최양락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금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나의 상황과는 관계없이 라디오 속에서 떠드는 그들을 속으로 증오하고 또 증오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주머니 속 2만 원을 만지작거렸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결코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 시간쯤 더 흘렀을까. 주머니의 지폐가 축축해졌을 무렵 나는 한 손에 교복을 움켜쥐고 차 문을 벌컥, 열려는 찰나 그 사이에 먼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욕, 욕, 욕….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다시 집으로 차를 돌렸고, 우리 집에는 작은 아버지도 와 있었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몇몇 장면을 제외하곤 선명하지 않다. 나 역시 패닉이었으니까.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작은 아버지는 갑자기 엄마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고, 몸싸움으로까지 번질 기세였다. 엄마는 그를 피해 안방으로 들어갔고, 작은아버지는 한동안 문을 두드리며 험한 욕을 뱉어냈다. 그때 나와 동생은 방에 있었다. 울다가, 그쳤다가, 그냥 멍 하니 의식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 사달이 일어나고 있던 때, 아버지라는 사람은 주방에서 태연히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를 후후 불어내던 입김, 후루룩 면발을 들이켜던 소리만큼은 선명하게 기억된다. 김 서린 안경을 벗어두고 연신 젓가락질을 해대던 아버지의 옆모습도.


그리고 몇 날, 몇 년이 지나고 그 일은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힌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생 때였을까. 옛이야기를 곱씹으며 내게 신세한탄하는 것을 일종의 낙, 스트레스 해소로 생각하던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그때 있잖아. 늬 작은 애비가 나한테 욕하던 날"

"응"

"그때 넌 뭐했니?"

순간 멍 해졌다. 나 그때 뭐 하고 있었지?

"나, 그냥 방에 앉아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어? 화나지 않았어? 엄마가 그렇게 모욕을 당하는데"

엄마가 내게 화를 내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궁금했던 것 같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게 난 뭘 하고 있었을까. 엄마가 공격당하고 있었는데 왜 난 용기 있게 그러지 말라고 하지 못했을까. 왜 분노하지 못했을까. 왜 그저 방 구석진 곳에서 쭈그리고만 있었을까. 이렇게 비겁한 나였던가 싶었다. 난 언제나 엄마 편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글쎄. 모르겠네"라고 답하고 말았다.


"그래, 서방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고 하니 내 탓을 해야지 어쩌겠니"


처음과 달리 말이 이어질 수록 엄마는 약간은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억누르는 투로 말을 내뱉곤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 나는 고작 열세 살이었고, 처음 겪어보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 그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울음을 참아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리고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 때는 서른이 넘은 뒤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엄마와 나의 관계가 툭,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이 에피소드도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욕을 퍼붓는 작은 아버지 앞에서 엄마는 내가 투사라도 되길 원했던 걸까.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 속에서 고작 13살이었던 나는 그렇게 강한 아이였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던 날 문을 열었을 때 현관에 놓여있던 아버지의 신발에 대해서, 엄마의 기구한 삶 속에 선택할 여지도 없이 편입되어 있던 나에 대해서, 엄마는 왜 미안해하지 않을까.


왜 설명하고 다독여주지 못했을까. 나는 엄마를 이해했는데, 그래서 원망하고싶은 마음을 외면하느라 애쓰며 살아왔는데, 그래서 되려 나를 미워하면서 커왔는데, 엄마는 열세 살의 나를 분명 나무라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엄마가 아니라 내가 보였다. 아무도 어린아이 취급을 해주지 않았던, 그러나 너무 어렸던 내가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동시에 어릴 적 마음껏 미워해보지 못했던 엄마가 너무 미워지기 시작했다. 미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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