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로 분해서 먼바다로 유영 쳐 떠났던 나는 과연 괜찮아진 걸까.
이후 몇 번의 상담을 갔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면서 엄마에 대한 분노나 원망, 과거에서 비롯된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은 걷어낼 수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근본적으로 불안하다.
어느 날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나는 마음이 뜨끔했다. 에릭 칼(Eric Carl)의 '캥거루도 엄마가 있을까?'라는 동화였다.
캥거루도 엄마가 있을까?
그럼! 캥거루도 엄마가 있지.
마치 너와 나처럼
그러면 사자도 엄마가 있을까?
그럼! 사자도 엄마가 있지.
마치 너와 나처럼
같은 라인의 문장이 반복되는 단순한 내용의 동화책이었다.
여느 때처럼 함께 책을 읽던 아이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도 엄마가 있어?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
올 것이 왔구나.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아이의 작은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몇 시간 같은 몇 초의 뜸을 들이다 '그럼, 엄마도 엄마가 있지'라고 애써 말하고 나서 괜히 아이의 배를 간지럽히며 화제를 돌렸더랬다.
그렇게 다른 의미에서의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딸에게 나의 엄마는 나를 버렸고, 나 역시 엄마를 버렸노라고, 이야기하는 순간이 오게 될까.
두려웠다.
그런 엄마를 나의 딸은 이해해줄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벌에 쏘이듯 날아와 꽂힌 아이의 질문에 나는 다시 무너졌다.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리상으로 시댁이 친정보다 위쪽 도시에 있어 거의 시댁을 먼저 들르고, 친정에 가는 코스로 지내왔었는데 한 번씩 친정의 안부를 물으며 먹을거리를 챙겨주시는 시부모님께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오늘 친정 들를 거지? 이 떡, 엄마 가져다 드려라."
행여 어머니께서 부자연스럽게 대답하는 내 모습을 눈치챌까 노심초사였다. 거짓말하긴 싫지만 친정과 연을 끊었다는 며느리를 과연 어떻게 보실지 두려웠다.
내가 아픈 동안 친정에 대해선 하나도 묻지 않으신 채 묵묵히 한 달 넘게 아이를 봐주신 어머니였지만(친정 엄마가 너무 매정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기는 하셨다고) 그래도 속시원히 털어놓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댁에서는 내내 맛있는 것 먹고, 웃고 떠들었으면서도 돌아오는 길에는 가슴이 먹먹해 눈물바람이 잦았다.
그러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마음의 결심을 내렸다. 남편에게 그간의 상황과 지금 친정과 나의 상태를 어머니께 전해달라고 한 것이다. 분명 명절 하루를 지내고 나면 친정 이야기가 나올 텐데, 애정으로 마음 써주시는 시부모님 앞에서 더는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그냥 감당하기로 했다.
기회를 엿봐 그간의 이야기를 남편이 전했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더 묻지 않고 알았다고 하셨더랬다. 그리고 대신 장조림이며, 연근조림, 열무김치, 백김치 등등 갖가지 반찬을 해다 주셨다.
내게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어쩌다 그런 독한 마음을 먹었느냐 물으시면 생전 먹지도 않는 소주 한 잔 나누면서 모든 것들을 털어놓고 싶었는데, 상할 대로 상한 나를 알아채셨는지 그저 반찬들로 냉장고를 그득히 채워주셨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나를 너무 모진 아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작아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결혼은 나의 탈출 통로였고, 지금 꾸린 가정과 새로 만난 식구들은 내게 안전한 요새와도 같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생기곤 한다.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다거나, 불행한 일이 닥치진 않을까. 순간순간 거센 파도처럼 불안이 덮쳐올 때가 있다.
퇴원 이후에도 세 번 정도 원인불명의 고열 증상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남편에 대한 의존이 너무 과해서, 사실 충분히 혼자서 입원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가 없는 순간들의 나는 너무 무기력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이런 증상을 의사에게 이야기하자 약 한 알을 더 처방해주었다. 이 약은 그간 먹었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나른하고, 무기력해지는 느낌이라 이틀 정도 복용 후 임의로 끊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정신건강의학과도 가지 않게 되었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진짜 나를 들여다보고 달래는 과정이기보다 약에 의존하게 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반추, 엄마와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반복해서 떠오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의 행복감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기에 스스로 그냥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다.
하지만 아직 엄마로 인해 고통받았던 '나'에서 온전한 존재로서의 '나'가 되는 길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엄마도 엄마가 있어?"라는 아이의 질문 앞에서 흔들렸던 눈동자.
그리고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순간에도 여전히 떠오르는 '죽음'에 대한 생각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한 날, 바닷가 나들이에 가서 파도에 돌멩이를 던지는 남편과 딸의 뒷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가끔 '여기까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그다지 완벽하지도 않은 '엄마'
뭐 하나 끝까지 해내 본 적 없는 '사회인'
배 한가운데에 수술 자국이 새겨진 '여자'
언제 다시 아프게 될지 모르는 '아내'로서의 내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때에도 그렇다.
오늘도 많이 웃고, 푼수 떨며, 고민 따위 없는 멀쩡한 사람인 척했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러니 속에서 헤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