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나는 컴플렉스 덩어리였다.
집에서조차 외모에 대한 폄하발언을 만성적으로 들으며 자랐다.
"내 자식은 정말 예쁠 줄 알았다. 첫 아이라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모른다"
"다리가 이렇게 두꺼워서 나중에 치마는 어떻게 입으려나"
그때는 상처가 되지 않았던 말들이 왜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또렷이 기억나고, 상처가 되는 걸까.
어릴 적 나는 아토피가 심했다.
주 증상은 특히 입술에 나타났는데 늘 딱지와 진물이 뒤덮여있었고, 늘 간지러움에 시달리며 입술 밑을 긁는게 일상이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입술을 긁는 내 습관을 고쳐주고 싶었던 건지, 충격요법을 주고 싶었던 건지,
어느 날 내게 네 얼굴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드는지 감상문을 써오라고 시켰다.
탁상거울을 앞에 두고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또박또박 적어내려갔던 글씨들
'내 입술은 거북이 등껍질 같다. 더러워보인다. 지저분하다. 징그럽다......'
너무 어려서 차마 수치스러움도 느끼치 못했다.
적으라니 적었고, 가져오라니 가져갔다.
종이를 받아들었던 아버지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글들을 읽었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나는 아직도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부모가 되면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된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엄마가 된 이후 부모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나와 꼭 닮은 아이를 낳고보니
이렇게 예쁜 것을, 이렇게 약한 것을, 이렇게 소중한 것을
어떻게 그렇게 키울 수 있었는지
딸을 키우면서, 딸을 사랑하면서
나는 나를 다시 키우는 느낌이 들었다.
서른 살이 넘어 내 몸이 완전히 망가지게 된 경험 이후
부모로부터 정신과 육체적으로 완전히 독립하는 길을 택하면서
컴플렉스 덩어리로 자라온 지난 시간과의 안녕을 택했다.
누군가의 딸이 아닌 그냥 '나'로서,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온전히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내 안에서 울컥 쏟아져 나온 보드랍고 말캉한
이 아이와 함께라면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만 같다.
과거는 단호하게 흘려보내고, 아이에게만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도 사랑받고 자란 사람인 것처럼.
내가 원했던 부모의 모습으로 한번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