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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Jan 30. 2024

조금 더 씩씩한 엄마가 되기 위해
폭포에 간다

2019년 받았던 큰 수술 이후 매년 병원 신세를 진다.

작년에만 갑작스런 고열과 구토 증상으로 5번이나 입원했다.

남편이 출장 가 있는 동안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에 간 것도 두번이나 되었다.

아이를 맡길 곳도 없었기에 딸은 엄마와 함께 구급차를 타는 경험도 벌써 여러번 겪었다.

응급실 의료진도 이제는 다 아는 내 이름, 내원 기록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처음 방문 자료를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며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넬 정도다.


그럴때마다 아이는 링거를 달고 벌벌 떨면 고통스러워 하는 내 곁에서 함께 해주었다.

이런 꼴을 보이는 엄마인 것이 너무 미안해서, 잠시 정신이 든 새 편의점으로 데려가 좋아하는 간식을 잔뜩 사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달랬다.

씁쓸한 상황 속에서 입이라도 달콤하라고, 못난 엄마는 그렇게 단 걸 자꾸 물려줬다.


평소에는 누가 봐도 건강해보이는 나,

그러나 언제 아플지 알 수 없는 잦은 입원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내일 누군가를 만나기로 해놓곤 새벽부터 열이 나 실려간다거나,

다음주에 미팅 약속이 있는데 입원을 해야하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대단한 병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겉보기에 쇠약해보이지도 않는데 매번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아플지 몰라요 라는 말을 누가 얼만큼 공감해줄 수 있을까.

자칫 책임감 없는 사람으로 비치진 않을까하는 노파심도 들었다.


올 1월에도 병원에서 새해를 시작했다.

피 검사 수치로도 알 수 없는 내 몸의 상태, 원인도 모르는 고열과 구토 증상은 이제 내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도 갉아먹는 듯 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집으로부터 조금만 떨어져도, 이러다 내가 또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몇번씩 목덜미를 만져보여 열이 나는지 안나는지 체크하기 바빴다.

한 시간을 외출하면 집으로 돌아와 두시간은 완전히 뻗어있어야 할 만큼 체력도 쇠약해졌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동안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너무너무 피곤해서 앉은채로 곯아떨어진 적도 많았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 외로움이 다시 또 다를 에워쌌다.


엄마가 좋다며 달려드는 딸에게도 살갑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다 나를 아프게 만드는 것 같은 착각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만 나이 시행으로 나이는 두 살이나 어려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죽을 날을 앞둔 노파마냥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로 느껴졌다.


하원한 아이와 놀아주기는 커녕 보기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TV를 틀어주고는, 그 옆에 누워서 기절하듯 잠드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이런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런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이 굴레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아침 바람이 선선한 초봄의 어느 날, 큰 마음 먹고 산책에 나섰다.

아주 오랜만에 느리게 느리게 바깥에서 걷고 있는 내가 기특할 만큼, 나는 그렇게 나약한 상태였다.


집 근처 산책로는 계곡 옆으로 난 완만한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꽤나 멋진 폭포가 있었다.

집에서 4000걸음 쯤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 이 집에 사는 5년 동안 한 번도 걸어서 와보지 못했다.

내 컨디션이 가장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시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섰던 길 끝에는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는 폭포가 자리하고 있었다.


막 초록으로 차오르기 시작한 나무들, 계곡의 물소리와 맑은 하늘을 보니

조금 기운이 나는 것도 같았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걸으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결심했다.

아침마다 이 곳을 거닐어 보기로.


드디어 나를 짓누르는 무기력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반항할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주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드디어 스스로 밖을 나선 나를

기특하게 안아주고 싶은 날이었다.


이날의 걸음이 나를 다시 건강했던 예전의 나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아이에게 더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걸음의 시작이었다.


흔히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햇살아래 산책하는 것을 권한다고 하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실제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도 했던 나는

정작 약을 먹을 때에는 산책을 '산책따위'로 치부하며 도통 밖으로 나서지 않았었는데

어쨌든 지금 몸은 약하지만 정신은 맑다는 건가? 하는 우스운 자기위안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매일 아침 폭포로의 산책은 계속되었다.

그 동안에도 응급실로 실려가는 일은 있었지만, 회복이 되면 그냥 습관처럼 걸었다.

그 순간에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침 햇살과 부는 바람에 감사하며,


진부한 표현이지만 몸이 아프고 나니, 일상의 작은 순간들도 다 귀하게 느껴졌다.

산책을 다녀와 피곤함에 소파에 누워 쓰러질지언정

걸을 수 있는 그 순간만큼은 감히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 차올랐다.


산책을 하고 나서 내 몸과 컨디션이 아주 좋아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어쨌든 아침마다 길을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내게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다.


하원 후 돌아온 아이에게는 폭포로 향하면서 봤던 벌레와 사람들 이야기를 조잘거리기도 했다.

엄마랑 한번 같이 가볼래? 라는 물음에 아이는

단호하게 싫다고 했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나를 위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씩씩하고 활기있는 엄마가 되어주기 위해,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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