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나는 부모가 되었다.
성별은 딸 / 3.2kg / 50cm의 소우주는 내 속에서 울컥 쏟아져 나왔다.
참 이상하지. 부모라는 존재로부터 정서적학대에 힘겨운 세월 속에 자랐으면서도 나는 꼭 한번은 뱃속에 아이를 품어보고 싶었다.
좋은 엄마가 되어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포부따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인간'이라는 동물로 태어났으니 나도 한번 그 생태계의 순리에 따라보고 싶었다.
빼앗긴 나라에서도, 전쟁통 속에서도, 가난해도, 사람은 사람을 낳고 그 사람이 또 사람을 낳고, 낳아야 한다고 말하고, 낳아보면 안다고 말하고...
순수하게 궁금했다.
어째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번식해온 것일까. 신기하고 이상했다.
때때로 '당신들은 왜 사람을 낳았습니까. 그리고 미워했습니까. 왜 나를 여기로 불러왔습니까. 사랑하지도 않을거면서...'라고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아무튼 학창시절부터 임신의 신비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소녀는 무럭무럭 자라 결혼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 심해 자연임신이 어려울거라고 했지만, 나는 임신을 계획하자마자 성공했다. 원하는 때에 무난하게 성공한 임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 축에 속한다는 건 나중에 깨달았다.
엄마는 말했다. '너도 자식 낳으면 철 들거라고. 엄마 마음 알게 될거라고'
정말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아보니 엄마의 말은 다 헛말이었다.
그 말이 맞았다면,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안됐다. 자신의 불행이 자식인 '나'로 부터 비롯된 것처럼 나를 저주해서는 안됐다.
유교사상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는 가정 안에서 왕으로 군림해왔다. 90년대 이전에 태어난 세대 중 이 말에 반박할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학교에서는 '효도'를 주제로 한 글짓기를 주제로 백일장을 열었고,
집집마다 가훈으로 많이 쓰이던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의미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부모의 말을 잘 들으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뜻으로 곡해되어 쓰였다. 비슷한 표현으로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도 들 수 있겠다.
부모의 말에 대들었다가 회초리를 맞거나 욕지거리를 듣는 것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해당됐기에 '그땐 그랬지'라며, 라떼 이야기 정도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육체적 정서적 체벌은 누가누가 더 맞았나 시합이 벌일 수 만큼 흔한 일이었다.(만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많이 부럽다. 당신은 행운아다.)
부모는 위대하며, 자식은 응당 부모에게 순종하며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프레임은 부모의 권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어떤 부모들은 그 프레임에 지나치게 취해있기도 하다.
바람난 아버지도, 생사 갈림길에 선 자식의 고통 앞에서도 매몰차던 나의 엄마도 언제나 당당히 '부모공경', '천륜', '근본'따위의 단어를 함부로 입에 올렸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 하지 않았으면서도 자식에겐 자식 이상의 도리를 강요했다. 지난 삶으로부터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자식이 치유해주길 바랐다. 자식을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고, 낳고 기른 시간에 이자를 붙여 자식을 적금통장으로 사용하려했다. 논리적으로 반박하려들면 '순종'을 운운했다.
물론 세상에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하고, 더 많은 것을 주려하고, 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자식을 안쓰럽게 여기는 일반적인 범주 안에 속해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런 부모에게서 선택받지 못했다.
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하면 할수록 되로웠다. 30년을 그렇게 살았다.
세상에 나쁜 부모는 있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는 한국사회의 이 확고한 전제는 학대가정에서 자라는 내내 내 영혼을 갉아먹었다. 엄마가 내게 욕을 해도, 내가 힘들때 곁을 주지 않아도, 내 이야길 들어주지 않아도, 늘 엄마도 사실은 날 사랑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낱같은 사랑의 증거를 찾기위해 종종거리는 삶을 살았다. 내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말이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처럼 그 증거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을 내가 대신 전해주고 싶다. '세상에 나쁜 부모는 있다'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분노, 우울에 사로잡혀 있다면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자주 죽음을 떠올리던 때, 내면의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 지독한 트라우마의 씨앗을 찾았다. 내 육체를 만들었으나 영혼을 망가트렸던 존재는 다름아닌 나의 '부모'였다.
그 사실을 마주하기까지, 마주하고 나서도 그 혼돈의 감정을 어떻게 삼키고 소화시켜야할지 몰라 몇 년을 끙끙 알았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고통을 지금 겪는 사람이 있다면 이젠 말해주고 싶다.
'어렸던 당신에게 모든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그 사람을 지목하라'고.
세상에 나쁜 부모는 분명 있다.
똑똑히 마주보고, 상처를 고백해라. 불행했던 부모의 과거를 짐작해 쉽게 용서하지 마라.
불행했던 부모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그 불행을 당신이 품어줄 이유도.
분이 풀릴만큼 원망하고, 마음껏 미워하라.
더이상 미워할 수 없을만큼 미워하다보면
그제서야 부모를, 나를,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미움이 잦아들고 마음에 은은한 평화가 깃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부모를 많이 미워했지만 이제는 미워하는 감정으로부터 아주 멀찍이 떨어져나왔다.
이제는 그들에게서 무엇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에게 사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을 그들의 자리에 둔다.
당신의 자리를 명확히하라.
당신이 행복한 곳에 자리를 잡아라.
그리고 다시는 그들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뿐이다.
2017년 10월 나는 부모가 되었다.
성별은 딸 / 3.2kg / 50cm의 소우주는 내 속에서 울컥 쏟아져 나왔다.
이 아이의 부모로 나는 새 삶을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나쁜부모'라는 블루홀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육아라는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