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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담 Feb 07. 2024

불행했던 엄마도, 꽤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어

얼마 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능검사의 일종인 웩슬러 검사를 받았다. 흔히 IQ검사라고 불리는데 아이가 곧 학령기를 맞이하는 만큼 어떤 수준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평소 활동량이 많지 않고 차분한 성격인 딸은 소심하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무언가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지만 또 시작하면 꾸준히 해내는 힘이 있는 아이이다. 내가 갖지 못한 진득함이 아이에겐 보이는 것 같아 내심 흐뭇하기도 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으레 하는 학습지나 영어학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엄마표 학습을 해온 아이이기에 과연 어떨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다.


사실 그보다 더 기대되고, 긴장됐던 건 내가 아닌 전문가가 봤을때 우리 아이의 모습, 그 뒤에 있는 '나'였다.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했기에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다. 사랑한다는 말, 응원하는 말, 따뜻한 포옹은 늘 아끼지 않지만 아이가 버릇없이 행동하거나 나에게 도전적인 태도를 취할때면 나도 모르게 내가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만다. 그러다 화의 기운이 사그라들면 한숨 돌리고, 아이에게 다가가 사과한다.


"아까는 엄마도 너무 기분이 나빠서 크게 화를 낸 것 같아. OO이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도 기분이 좋지 않거든.. 그래도 노려보고 소리지른건 정말 미안해. 자기 전에 이 말 해주고 싶었어."

그러면 아이는 답한다.

"그래. 나는 엄마가 화낼때 엄마가 정말 밉지만 그래도 사랑을 하긴 해."

'사랑을 하긴 해'라는 말을 처음 듣던 날 나는 너무 웃겨서 또 그 마음이 예뻐서, 찡해서 깔깔 웃다가 눈물이 찔끔 고였다. 이 말은 요즘에도 투닥거리다 자주 한다.


이토록 많은 시행착오 속에 사랑으로 키운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에 가다니.. 모든 부모들이 그럴테지만 나도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들떠있다. 입학 기념 가방은 벌써 일찌감치 사두고, 예쁜 꼬까옷도 야금야금 구입해뒀다. 웩슬러 검사도 이런 준비 과정 중에 하나였다.


"오늘 OO이 생각주머니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러 갈거야. 센터에 가면 선생님이랑 너랑 둘이서 여러가지 퍼즐이나 퀴즈를 풀건데 너무 긴장하지 말고, 모르는 것 있으면 질문해도 괜찮아."

아이는 의외로 담담히 응, 이라고 대답했다.


소심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때는 의연하고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내 아이라고 해서 전부를 다 알 순 없는 것 같다.

센터에서 선생님이 나와 인사를 건네자 아이는 뒤도 안돌아보고 쪼르르 선생님을 따라 검사실로 들어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는 막대사탕을 하나들고 쫄래쫄래 걸어왔다.

검사를 마친 선생님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첫 마디는
"잘 키우셨네요" 였다.


 "모든 영역에서 굉장히 정확하고 안정감 있게 문제를 해결했어요. 처음 접하는 부분에서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감이 잡히면 무서운 속도로 풀어 나가더라고요. 소심하고, 소극적인 측면이 있지만 내면은 꽉 차 있는것이 느껴졌어요."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 내내 왜이리 가슴이 콩닥거리던지..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으로 모든 과정을 잘 마쳤다는 평가에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게다가 마음이 꽉 차있는 아이라니.. 한글을 일찍 떼는 것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마음이 가득 차 언제나 안정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선생님의 짧은 코멘트였지만 그 동안의 노력과 마음을 읽어주신 듯 감동이 차올랐다.


나 지금껏 잘 해왔구나. 성장과정에서 아픔이 많았던 나이지만 내 아이에게는 다른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거였구나.. 그렇게 큰 안도감이 밀려왔고, 진심으로 행복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부모의 불우한 가정환경이 양육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참 서글펐다.

'금쪽같은 내새끼'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닌듯 했다.  하지만 누구나 꼭 그런것 만은 아니고,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걸고 내 가정을 일궈왔다.


때로는 화내고, 모질게 구는 엄마일지라도 언제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는다는 걸 알려주기위해 행동했고, 속삭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런 나를 알아봐주기를, 인정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신청한 웩슬러 검사였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 과정을 해내는 아이가 전문가의 눈에 마음이 가득 차 안정적인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이 지난 세월을 다 껴안아주는듯한 느낌이었다.


선생님께 사탕 하나를 받아들고 신나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정말 장하다고, 씩씩하다고 몇 번이나 칭찬을 쏟아줬다. 내게 이렇게 기특한 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 아이를 볼때 나는 인생을 다시 사는 것 같다.

불우한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써내려가는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가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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