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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하게 Mar 06. 2024

엄마들 모임에서 영리하게 자리를 지키는 법

아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지금, 내게도 아이친구 엄마들이 일상에 꽤 가까운 지인으로 자리잡았다. 심적이 아닌 물리적으로 말이다. 아이의 친구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 그리 쉽게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눈빛 하나가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임신했을때부터 나는 조리원 동기 등 엄마 커뮤니티에 발을 담그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어린이집은 자차등하원 시스템이라 자연스레 엄마들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지만 유치원은 조금 달랐다. 매일 아침 아파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태워 보내야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아이를 등원버스에 태우던 날, 그 어색하던 공기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일찌감치 나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무리를 마주할 때의 긴장감은 학창시절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어색하게 구석자리에 서 있던 순간, 나를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 친구 엄마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는 만 5세, 한국나이로 6세에 유치원에 갔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먼저 졸업한 아이의 엄마였다.


엄마들간 커뮤니티에 대해 시선이 좋지 않았던 나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인사를 해주니 조금은 안도되었던 마음은 또 무엇인지..


그렇게 자연스레 3-4명의 엄마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부터 우려스러웠던 엄마들 간 단톡방이 내게도 생겼다. 다행히 시시콜콜 수다를 늘어놓는 종류의 단톡방은 아니었지만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키즈카페에 가자는 둥, 엄마들끼리만 브런치 하자는 둥 이런저런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다툼없이 잘 노는 편이라 나도 가끔 함께 키즈카페에도 가고, 티 타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만남이 반복되다보면 대화주제도 떨어지고, 말이 많아지면 실언도 하게 될 것이 뻔한 터라 이 모임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거리를 두는 전략이 필요했다.


나도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이런저런 수다로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집에 돌아와보면 어쩐지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나갈때마다 은근히 신경쓰이는 옷차림과 자랑과 자조가 애매하게 섞여있는 대화 패턴, 그 안에서 취해야하는 적당한 리액션 등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무리와 애써 등지고 싶진 않았다. 말 많은 커뮤니티에서 굳이 누군가의 적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만의 몇 가지 전략을 마음에 새겼다.


1. 모임은 절반만 참석할 것.

예를 들어 1년에 6번쯤 모인다 치면 3번만 참석하는거다. 이번에 참석했으면 다음번엔 나가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정도로 만남의 템포를 조절했다.


2. 바쁜척 한다.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이기때문에 그들과의 모임에 전적으로 임할수도, 아닐수도 있었지만 난 후자를 택했다. 한번씩 모임에 나가서도 일때문에 바쁘다는 내색을 비쳐 매번 불러내면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어필해뒀다. 전업주부더라도 무언가를 배운다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3. 엄마들끼리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다.

특히 아이를 두고 엄마들만 모일때는 서로 꺼내고픈 이야기가 많아 목소리 톤이 한층 더 높아진다. 이럴땐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자. 멍하니 앉아서 분위기를 망치란 소리가 아니다.

웃기면 웃고, 감정에 공감해주며 그저 리스너 역할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관계에서의 마이너스 요소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


4.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하지 말라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또 뭐냐고?

엄마들과 만나서 하는 50가지의 이야기 주제 중에서 한 두가지 정도는 솔직하게 말해도 좋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데 혼자 입 꾹 다물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의뭉스럽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종류와 정도의 선에서는 솔직하게 본인을 드러내보자. 훨씬 더 관계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5. 자랑이나 뒷담화에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레퍼토리가 바로 '자랑'과 '뒷담화'이다. 이때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진중하게 들어주되 질문하지 않는거다. 예를 들어 "지난 주말 샤넬 오픈런이 엄청 길더라고요. 들어간 김에 가방 2개랑 귀걸이랑 이것 저것 사왔어요. 들어가기 힘드니까~" 이런 얘기를 들었다 치자. 그럴때 나는 "아~" 하는 감탄사만 내뱉는다. "그래서 뭐 샀어요? 얼마나 썼어요?" 물어보기 시작한다면? 그 이야기는 끝이 없을거고, 현타를 피하긴 어려울거다.

뒷담화도 마찬가지. "몇 동 사는 누가 누굴 때리고 욕을 했다더라고요. 어린 애가 그런 욕을 어디서 배웠을까? 애 엄마는 고상해보이던데 실제론 안그런가봐요~" 라고 누군가 운을 뗐다면, 나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엥? 그렇구나"하고 만다. 이럴땐 사람이 좀 맹~해 보이는것도 괜찮다. 상대가 대화할 맛이 뚝 떨어지게 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이러한 몇 가지 전략으로 나는 유치원 기간을 잘 지나왔고, 초등학교라는 또 새로운 릴레이를 이제 막 시작했지만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내게는 나만의 전략이 있고, 아이들은 커서 자신만의 또래집단을 만들어 나갈테니까.


짧은 육아경력으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엄마들 관계에 무조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어느정도 선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하는게 좋은 것 같다. 인간사라는게 나 혼자 잘났다고 해도 꼭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도 오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나와 입원을 할 수 없어 아침 저녁으로 링겔을 맞아야했을때, 잠깐씩이라도 이웃에 맡겨두고 다녀오니 그나마 든든했더랬다.

사람은 결코 혼자 힘으로만은 살수 없는 법이다. 언제 도움을 받고, 주게 될지 모를 일이다. 


새 학기 시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관계를 현명하게 지키는 힌트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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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에 실려있던 글 일부가 브런치북으로 엮이지 않아 부득이 재업로드 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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