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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참 좋겠습니다

- 25년 차 작가라기로 살아가며 -



"아무리 카피와 보도자료를 많이 써도 편집자는 작가가 아니며,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학자가 아니다. 다만, 글을 읽는 눈과 왕성한 지적 호기심으로 누군가 물을 대주면 한 방울도 남김없이 피와 살이 되게 하려고 애쓴다.”
-읽는 직업, 이은혜-





# 사춘기, 사추기, 나의 작가라기

이 문장을 읽고 명치끝이 아파져 왔다. 방송작가 생활과 편집자의 역할이 너무 비슷해서. 아이템이 정해지면 계속 읽고 쓰지만 창작하는 '찐 작가'가 아니며, 많은 논문과 자료를 읽어도 학자가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 태생이 모호하지만 갈수록 글을 읽는 눈은 높아지고 지적인 호기심이 커지는 사람. 나도 모르게 정보나 트렌드를 알려고 애쓰는 사람. 동병상련일까. 그동안 작가이면서 작가가 아닌 느낌을 받아온 나는 이 문장에 정곡을 찔린 느낌이다. 사춘기, 사추기, 며느라기처럼 작가로 인정받고 싶어 한 시간을 ‘작가라기’라고 이름 짓고 그 시간을 떠올려 본다.



# 작가라기 3년 차, 과(菓) 작기 사고 치다

작가라기 1년 차 지(紙) 작기인 막내 작가 시절. 방송에 나갈 한 줄을 쓰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웠다. 감히 선배들이 쓰는 편집실은 들어가지 못하고 옛날 장비를 쌓아둔 편집실 한구석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시간. 이렇게 쓰는 게 맞는지 알 수 없는 불안과 마감의 불안을 동시에 안고 한 줄 한 줄 채워가던 원고는 맘처럼 되지 않고 속절없이 마감 시간이 다가오던, 그 텁텁한 아침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작가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책 몇 권이나 내셨는데요?”


일반인이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르 코르동 블루 요리학교에 다니는 서른도 안 된 일반인 출연자가 꼭 ‘작가’라는 자막을 넣어달라는데, 내가 던진 말. 책 한 권 내고 작가 입네 하는 게 어이없고 ‘작가는 아무나 하나?’라는 속마음이 그렇게 삐져나온 거다. 흥분한 출연자가 작가의 기준이 뭐냐며, 자기를 무시했다고 책임 피디에게 전화로 따졌고 나를 가만 안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일이 커졌다. 된통 당한 느낌이었지만 이대로 작가 생활이 불명예로 끝나는 건가. 억울했다. 다행히 책임 피디가 사과하고 나한테도 주의를 주면서 사건은 끝났다. 작가라기 3년 차 과(菓) 작기 즈음의 대박 사건. 작가가 뭐길래 난 ‘작가’ 자막을 넣어주기 싫었을까? 나는 기준에 맞는 작가인가?


# 작가라기 10년, 20년 차를 지나며

그 사고를 치고도 방송작가 생활을 이어간 건, 아직 제대로 된 내 글쓰기를 못해서다. 연장 연장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은 좀 낫겠지. 아직 제대로 써보지 못했잖아!’라는 마음으로 버티기의 시간. 대선배들의 주옥같은 원고를 모으며 ‘나도 언젠가... 언젠가는... 저 선배처럼’ 주문을 외우며 버텨왔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닮고 싶은 선배들의 글에 가닿을 것만 같았지만 그건 꿈이다.


그 후, 방송국을 옮겨가며 여러 프로그램을 갈아타는 동안 프로그램에 따라 시간이 휙휙 지나갔다. 매일 프로그램을 하면 하루 단위로 시간이 가고, 한 달짜리 프로그램을 하면 한 달씩 시간이 성큼 갔고, 1년 장기 프로그램을 하면 1년 단위로 뭉텅뭉텅 지나가는 방송국 시계. 그렇게 작가라기 10년 차인 석(石) 작기를 보내고 20년 차인 도(陶) 작기에도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자는 소원은 멀기만 하다. 아니 더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눈은 높아지는데 손은 따라가지 못하니까.


# 그럼에도 글을 쓰는 한 가지 이유

그럼에도 글 쓰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글로 밥벌이하는 글로 소득자로 살아가고 있다. 과연 글 쓰는 작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고민하던 중, 나의 측근 중 측근인 엄마한테 자서전 쓰기를 제안했다. 엄마는 과거를 들춰보면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도 떠올려야 해서 싫다고 하는데 포기할 수 없어서 방법을 고민했다. 문제은행을 만들어 드리기로. '사계절' 콘셉으로 엄마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해당하는 질문을 보내 놓고 질문에 답만 하면 된다고 고집했다. 말을 그렇게 해 놓고 엄마가 구술하면 내가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의 반응은 의외였다.


" 내 이야기는 내가 잘 아니까, 내가 쓸게 "


이건 무슨 일이지? 막연히 내가 쓰면 더 잘 쓸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으니. 엄마 말대로 엄마의 서사는 엄마가 제일 잘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대신 써 주는 것보다 내 마음을, 내가 기록하는 게 글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걸 놓치고 있었던 건, 바로 나였다.


# 25년 차 은(銀) 작기를 앞두고

작가라기 25주년 은(銀) 작기를 앞두고 있는 나. 여전히 롤 모델인 선배들처럼 아름다운 글을 쓰는 방송작가는 못되고 있다. 어쩌면 희망은 제자리걸음일지도.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글 쓰는 일 자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그 옛날 초짜 방송작가였을 때, ‘당신이 작가냐고’ 건방지게 물었던 나. 이제는 소심한 이유로 글을 쓴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글 쓰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 매끄럽지 않아도 좋고 전문 작가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글을 쓰면 좋겠다. 이건 작가로 인정받고 싶던 '작가라기' 25년을 보낸 나의 반성문이다. 힘 있는 사람이나 특정인의 글과 목소리만 정답이 아니지 않은가. 평범한 우리 엄마의 인생 이야기가 한 권의 자서전이 되듯 다양한 사람들의 서사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세상이길 바라며 이 한마디를 꼭 하고 싶다.


"당신이 글을 쓰면 참 좋겠습니다."


엄마한테 한 말이지만, 어쩌면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나만의 눈으로 나의 서사로 계속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말. 그것이 글을 쓰는 유일한 이유가 되기를 바랄 뿐.(이것은 홍승은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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