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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람이 문장부호라면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작가의 그 문장


“언니는 따옴표 같지, 늘 진지하니까.
나는 좀 정신없어서 쉼표 같고,
우윤이는 기본 표정이 물음표고,
의외로 해림이가 단단해서 마침표고…….
너는 말줄임표다, 말줄임표.”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 당신의 문장부호는

내 마음에 담긴 정세랑 작가의 문장이다. 문장부호마다 걸맞은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발상은 얼마나 신박한가. 얼마 전 TV에 출연한 정세랑 작가가 사람의 이미지를 갖가지 새(BIRD)로 연결 짓는 장면과도 겹쳤다. 그녀의 대단한 관찰력! 나 역시 작가처럼 친구들에 해당하는 문장부호를 떠올려봤다. 궁금증이 많은 친구 A는 물음표, 늘 다른 사람의 의견만 묻고 자기표현을 잘 안 하는 친구 B는 말줄임표, 감정 빼고 핵심만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친구 C는 짧고 간결한 마침표.


# 나만의 문장부호는 무엇

그렇다면 나한테 적당한 문장부호는 무엇일까? 단단한 마침표가 제일 마음에 들지만, 항상 내 모습은 아니듯 하고. 가끔 미친 듯 쏘아댈 때는 느낌표가(!!!) 따따따블이고, 때론 결론 못 내고 머뭇거리는 말줄임표인데. 헉ㅠㅠ. 현실의 나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모습을 가진 문장부호였다니... 물론 예의를 밥먹듯이 하며 내 밑바닥까지 보여주지 않는다면 내 속의 모든 문장부호를 들키지는 않으리라. 상황마다, 사람 따라 한 가지씩만 콘셉처럼 보여주려면 될 테니까. 앗, 그렇다면 내가 이름 붙인 친구들의 문장부호도 내가 본 일부일 텐데, 그 일부를 친구의 전부라고 착각한 건 아닐는지.


# 이름은 하나인데 바다는 여럿이더라

지난해 수술 후, 요양 중인 친구 수녀를 만나러 속초에 갔다. 원래 맡은 소임은 사별 가족을 챙기고 아픈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수녀인데 정작 그녀가 '환자'가 되어 요양 중이었다. 늘 바쁘게 온 힘을 다해 다른 이들을 챙기다 자신을 돌보게 된 시간이었다. 친구는 여기 와서 하는 일이란 기도하고 홀로 밥해 먹고 산책하는 게 하루 일과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매일 바다를 봐, 그런데 바다가 매일 달라. 하늘과 바다 구분이 안 가는 파란색일 때도 있고, 어느 날은 검은 파도가 몰아쳐 무섭게 변하기도 하고, 금세 아무 일 없다는 듯 잔잔해지는 데 정말 바다가 매번 달라져. 그런데 그게 다 내 마음 같아. 사람들은 그 모든 걸 ‘바다’라는 이름 하나로 부르지만, 다 같은 바다가 아니야......”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파도에 지우는 건 나의 일

‘바다’라는 이름은 하나뿐이지만 상황에 따라 여러 얼굴이 있고, 그 모습이 전부 '나'였다는 친구의 뜨거운 고백.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 암 환자가 매일 바다만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바다의 이름은 하나지만 다 같은 바다가 아니었노라고. 친구의 고백을 들으며 정세랑 작가의 문장부호의 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나 역시 마침표, 느낌표, 말줄임표처럼 문장부호 하나마다 다른 사람을 안다고 퉁쳤지만, 그 안에 내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얼굴이 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평가하고 구분 짓는 일이 조금 무서워진다. 나도 그렇게 평가받는 걸 싫어하면서 습관적으로 가볍게 이름 짓고 평가한 사실이 또렷하게 기억 나서다. 혹여 그런 마음이 든다면, 그때는 그런 순간이었다고. 그때 기분이 그랬다고. 그냥 그렇게만 '스타카토'처럼만 짧게 생각하고, 나의 편견과 평가는 '파도'에 지워지는 일이면 좋겠다. 그건 나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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